•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우리금융그룹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우리금융그룹
    금융은 흐름입니다. 막힌 데 없이 구석구석 흘러가야 합니다. '이승제의 금융通'은 국내 금융권에서 일어나는 돈과 정보의 흐름을 좇아가려는 시도입니다. 딱딱한 형식주의를 벗어나 금융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고자 합니다.  

    # 임종룡 과장(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큰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날렵했다.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은행·증권제도과장 시절, 경기도 과천 청사의 축구경기장을 펄펄 날았다. 주변 사람들은 임 과장의 화려한 드리블을 보면서 "덩치에 맞지 않게 신속하고 주도면밀한 일처리가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외유내강의 기상을 갖췄다는 게 그에 대한 총평이었다. 그는 인사철마다 늘 영입대상 0순위였다. 국장들이 임 과장의 빼어난 일처리 능력 못지않게 그의 '역대급' 축구실력을 탐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시절 과천 청사의 공무원들은 부처 내, 부처 간 축구 대회에 그야말로 사활을 걸었다. 심지어 모 과장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승진코스를 밟았다. 그가 환상의 공격수이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 NH농협금융에서 옛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출범시킨 NH투자증권. 당시 업계에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우리투자증권이 경쟁력 있는 증권사였지만, 농협 계열에 들어가면 빛바래질 거라는 비관 전망에 힘이 실렸다.  

    NH투자증권은 농협중앙회, 농협금융 산하에 놓였음에도 완전히 결이 다른 DNA를 발휘했다. 일견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베팅하며 승승장구했다. IPO(기업공개) 및 회사채 발행 분야에서 잇달아 '대박'을 치며 업계 최상위권 하우스로 올라섰다. 

    이런 성과는 당시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의 리더십에서 비롯했다. 임 회장은 농협중앙회와 계열 금융사들에게 "NH투자증권의 인사와 정책 등을 터치하지 마라"고 못 박았다. "IB(투자은행) 쪽은 '야성'이 중요하니 농협의 성향을 심으려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옛 우리투자증권의 인수 과정과 NH투자증권의 성장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그 당시 임종룡 회장의 이름 앞에 'M&A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며 "인수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인수 후 빠르게 비교우위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평했다. 이어 "임 회장의 머릿속에 그 같은 시나리오가 이미 프로그래밍돼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농협금융 회장의 자리는 딱히 매력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이 농협중앙회 노조와의 갈등으로 사퇴하면서 "농협금융은 제갈량을 데려와도 안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임종룡 회장은 취임 후 노조와의 갈등을 적극 중재하며 원만한 타협에 이르렀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일하며 얻은 '해결사' '중재의 달인'이란 별명이 공치사가 아님을 다시금 입증한 것이다. 
     
    임 회장은 지난 2015년 금융위원장으로 화려하게 관가로 복귀했다. 농협금융 회장 시절 일궈낸 성과들이 직접적인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그 앞에 놓인 최대 과제는 금융개혁과 조선·해운 구조조정이었다. 임 위원장은 세심한 셈법과 특유의 뚝심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우리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위한 초석을 깔았다. 다시 한번 그의 명성이 빛났다. 

    #임 회장은 기재부 시절 직원들로부터 '닮고 싶은 상사'에 세 번이나 선정됐다. 직원들에 화를 내지 않았고 후배들을 친절하게 배려하고 이끌었다. '임 과장' 밑에서 일했던 한 서기관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줬다. 

    "임 과장은 스스로 몸을 낮추는 사람이다.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제법 괜찮은 정책기획안을 내놓으면 자기 일인 것처럼 달라붙어 완성도를 높여준다. 어떨 땐 '이게 내 작품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임 과장은 장관에게 해당 기획안을 보고하며 기획자 란에 자기 이름을 넣지 않았다. 괜찮은 기획안이면 원 발제자인 후배 이름을 쏙 빼 놓고 자기 이름만 적어놓는 000 과장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선배다."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란 말이 있다.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나온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의 열매에 이끌려 사람들이 몰려오듯, 덕행 (德行)을 갖춘 사람은 무언(無言) 중에 다른 이들을 심복시킨다는 얘기다. 

    임 회장은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두고 "경제 체질 개선과 민생 안정을 동시에 추진할 인물"이라며 경제부총리로 점찍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관직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 2월 임 회장은 화려하게 금융권에 컴백했다. 우리금융그룹의 차기 회장으로 뽑힌 것이다. 정치권과 시장에서 엇갈리는 반응이 나왔지만, 그가 우리금융을 새롭게 끌고 갈 거란 데 토를 다는 사람을 찾긴 힘들었다. 그의 필모그래피(영화·작품 목록)은 그처럼 압도적이고 선명하기 때문이다.    

    유능하고 존경받는 경제관료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CEO(최고경영자), 그리고 다시 금융위원장으로 관계에 복귀, 이어 우리금융 회장으로 컴백…

    임종룡의 따스한 봄날들이었다.  
       
    ps.  봄이 지면서 은수(이영애)와 헤어진 상우(유지태)는 홀로 갈대밭을 찾는다. 예상과 달리, 소리를 채집하는 상우의 얼굴엔 얕지만, 성숙한 미소가 번진다. 그 미소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