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확실성 높아지자 우리 경제 복합위기 직면야당, 내년 예산 7000억 추가 삭감… 반도체법·세법 등 정책도 올스톱나라 살림살이 놓고 힘겨루기 그만… "각자 최선 다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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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사태 후 이어지는 탄핵 정국으로 정치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우리 경제도 위기에 놓인 가운데 야당이 정부를 향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경제 현안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예산안마저 삭감하며 나라살림까지 볼모로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야당은 정부가 제출한 677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에서 총 4조8000억원을 삭감해 10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 없이는 예산 협상도 없다며 감액된 예산안을 처리하고 내년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할 계획이다.앞서 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부안보다 4조1000억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바 있다. 여기에 약 7000억원을 더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액만 이뤄진 예산안은 정부 동의 없이도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다. 경기 침체,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 미·중 갈등 격화 등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감액된 예산만으로 내년 나라 살림을 꾸려야 하는 것이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며 내년도 예산안의 향방도 불투명해짐에 따라 서민 가계와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또 기업들도 경영 계획 수립에 어려움으로 고용, 투자 등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이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날 "감액 예산안을 그대로 확정하는 것을 협박 수단으로 쓴다는 건 민주당이 감액한 예산안이 잘못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예산안뿐만 아니라 시급히 처리해야 할 주요 정책들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상당수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탄핵 정국으로 협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주주환원 증가액 법인세 5% 세액 공제, 배당 증가액 저율 분리과세, 상속세 관련 최대 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자산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들이다.
또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의 정책인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 성장을 위한 특별법도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 전력망 확충을 위한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내 주택 270만호(그 중 LH 물량은 70만호) 공급 계획도 사실상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관계 부처 합동 성명에서 "총력을 다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 내년 예산안이 내년 초부터 정상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신속히 확정해 주시길 요청드린다"며 "경제 안정을 이루고 대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도 국회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나라 살림살이를 놓고 힘겨루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입모은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당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정부는 정부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국가와 국민 경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며 "계엄, 탄핵 같은 돌발 이슈로 국가 신뢰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여·야·정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예산안의 재정 지출에서 의무 지출(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서민들의 재건(리빌딩)을 위한 방향으로 편성돼 있다"며 "결국 예산 삭감은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경기가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