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장비 충원 요청에 '실적' 핑계 잇단 반려반려사항 구두로 전달… 내부문서도 남지않아 재난대응 예산 부족도… "현장업무 공감 못 해"
  • ▲ 공중진화대 헬기 하강 훈련 모습 ⓒ연합뉴스
    ▲ 공중진화대 헬기 하강 훈련 모습 ⓒ연합뉴스
    "우리 중 누군가 죽어야 우리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항상 하는 말이라고 한다. 구조에 필요한 안전 장비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해도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故이영도 산림청 공중진화대원이 순직하기 전 본부에서 구조장비 충원요청을 지속적으로 반려한 사실이 뉴데일리 취재 결과 드러났다. 산림청이 최근 공공기관 중대재해 1위의 불명예를 안은 가운데, 이 대원의 순직이 예견된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1일 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산림청은 최근 이 대원의 항공구조에서 상시 상황을 녹화할 수 있는 바디캠을 포함한 구조장비 구매 요청과 임무 수행을 위한 전문교육 요청을 구조실적을 이유로 반려했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관계자들은 들것의 경우 재작년에 충원이 있었으나, 새로 도입을 요청한 바디캠을 포함해 기존에 사용하던 하네스(등반용 벨트)와 카라비너(잠금장치) 등 장비는 충원이 미뤄졌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이 대원은 지난 3일 설악산 낙상 환자를 구조한 뒤 로프를 이용해 헬기에 오르던 중 안전벨트 역할을 하는 '하네스'가 풀리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산림청이 이 대원의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하네스의 충원 요청을 묵살한 게 이번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구조장비 지원을 반려한 이유로 실적이 거론됐다는 게 내부자의 전언이다.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관계자 A씨는 "산림청은 이번 항공구조에도 하네스를 포함한 구조장비 구매 요청과 임무 수행을 위한 전문교육 요청도 구조실적을 거론하며 반려했다"며 "바디캠 같은 경우는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기존 노후화된 장비 교체를 요청하는 사항도 있었다"고 말했다.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관계자 B씨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장비에 대한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예산을 결정하는 부서에서는 공감하지 못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구조 실적이 많지 않다보니 본부 측에서 지원에 소홀한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 ▲ 6일 강원도 태백고원체육관에서 엄수된 고 이영도 산림청 공중진화대원 영결식에서 동료 공중진화대원들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6일 강원도 태백고원체육관에서 엄수된 고 이영도 산림청 공중진화대원 영결식에서 동료 공중진화대원들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문제가 하루이틀 사이에 벌어진 게 아니라는 내부 진술도 나왔다. 이전부터 기관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은 "구조 일년에 몇 번한다고 그걸 사느냐", "구조 실적도 없는데 무슨 교육을 받느냐", "팀원들끼리 돌려쓰라" 등의 언행을 일삼았다고도 전했다. 

    B씨는 "구조실적이 적으면 안전한 장비를 사용하면 안되는 것인지, 전문교육 없이 주먹구구식 교육을 통해 배워야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군인은 필요없다는 식의 안일한 사고와 무관심이 이영도 대원을 죽게 만들었다"고 한탄했다. 

    이어 관련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A씨는 "자체 예산 배정이 없다 보니 사실상 다른 과의 예산을 뺏어와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헬기 운영비에 상당 부분 비용이 투입되면서 장비 구매 관련 예산 할당에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구조장비 충원에 대한 반려 사항은 내부문서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산림청 내부에서는 장비 충원에 소홀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관계자 C씨는 "현장에서 구조장비 충원을 요청하더라도 본부에서부터 구두상으로 반려되기 때문에 관련 문서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배경에는 일반 행정공무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산림청 특성상 재난대응 부서가 외면받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B씨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소방청은 조직 전체가 재난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업무 수행에 집중하고 발전 방향을 정한다"면서 "반면 산림청은 고위층 전체가 행정공무원이기 때문에 더 나은 재난대응을 위한 요구사항을 제출해도 공감을 못하는 게 일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장비 충원을 담당하는 산림항공본부 관계자 D씨는 "구조장비 지원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확인하고 있고, 사고 수습이나 재발 방지와 관련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본청에서도 검토 중"이라면서도 "아직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