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美 투자 압박에 이중고예정됐던 칩스법 보조금 물 건너갈 위기관세 폭탄 본격화 … 12일 철강·알루미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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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한국 경제 중심축인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핵심 산업과 수출 기업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시장 분위기 속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관세 압박 속에서 위기에 직면했다.AI(인공지능) 산업 성장의 한 가운데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관세와 추가 투자 압박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고 석유화학과 철강, 자동차 분야도 대미투자 압박과 관세 영향 등에 면밀히 대응하지 않으면 생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반도체 산업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힘든 시절을 겪고 있다. 가까스로 지난해까진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올 들어서 반도체 생산은 제자리걸음을 하며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보릿고개를 이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1월 반도체 생산(계절조정지수)은 전월 대비 0.1% 증가에 그쳤다. 통상 1월을 비롯한 1분기가 계절적 비수기로 꼽히긴 하지만 최근 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과 맞물려 중국업체들이 저가 공세에 나서고 공급 과잉이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그 결과 2월 반도체 수출도 16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됐다. 제조업 전체 생산과 출하 수치도 동반 하락했다. 제조업들의 부진이 기업들의 현금 흐름 악화로 이어지면서 자금조달과 투자가 위축될 우려 또한 커지는 상황이다.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섬과 동시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기조를 기반으로 전 정권인 바이든 정부에서 이미 결정난 반도체과학법(CHIPS ACT)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본격적으로 쏟아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반도체 기업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반도체 보조금 지원 근거인 칩스법 폐지 방침을 밝혔고, 이어 7일에는 대만과 함께 한국을 직접 꼽으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 성장을 가로막은 원인으로 언급했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대규모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지난해 12월 바이든 정부와 보조금 수령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은 47억 4500만 달러(약 6조 9000억 원)를, SK하이닉스는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2000억 원)를 미국 공장 투자에 대한 보조금으로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최악의 경우 이것이 전면 백지화될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미국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정면 저격하고 나서면서 기업들은 이미 집행 중인 투자금에 더해 신규 투자에 나설 경우까지 계산해야 하는 처지다. 삼성과 SK하이닉스에 앞서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미국에 총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면서 상황은 더 빠르게 돌아가는 형국이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단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 마련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은 섯불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다. 미국에 또 한번의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장 투자에 나서기엔 실익이 너무나 적은데, 지난해 업황 불황으로 자금 조달도 버겁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추가 투자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받을 불이익 또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겐 악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관세를 물리면 보조금을 주지 않더라도 외국 기업들이 미국 내에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고 삼성과 SK 같은 외국 기업들이 관세 아니면 추가 투자를 택할 수 밖에 없게 압박을 강화하고 있어 선택지는 매우 좁다. -
- ▲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신공장 건설 현장 모습 ⓒ삼성전자
철강이나 석유화학, 자동차 산업도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몸을 사리는 상황이다. 당장 북미에서 생산된 차량 중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준수한 차량은 한 달간 25% 관세 부과를 면제하지만 오는 12일부터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가 부과되고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해서도 이달 중 관세 정책을 새롭게 밝힐 예정이다.자동차업계에선 미국 외에서 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기업들을 향한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 점점 더 거세질 것으로 보고 '플랜B' 검토에 착수한지 오래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 완공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생산능력을 연 30만 대에서 50만 대까지 늘리고 미국 행정부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현지에서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의 경제적 기여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그나마 미국의 알래스카주 LNG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로 호재가 예상되는 철강업계도 조심스러운건 마찬가지다. 이번 프로젝트가 국내 제철, 조선 기업들이 수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