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호관세 유예, 반도체 관세 예고 … 韓경제 불확실성 증폭취약한 내수에 대외리스크 점화 … "경기 상방 요인 만들어야"노동생산성 OECD 최하위권 … "R&D부터 52시간 규제 풀어야"상속세 사실상 OECD 1위 … "중장기적 자본이득세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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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 테헤란로 ⓒ뉴시스
침체된 내수와 미국발 관세 폭탄으로 풍전등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경제가 자칫 회생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에 좀 더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이 시국에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개선과 인센티브 확대에 적극 나서 경기 상승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1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2월 숙박·음식점업 생산지수는 103.8(2020년=100)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해당 지수는 22개월째 단 한 번도 늘지 못하면서 서비스업 생산지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역대 최장 부진'을 기록했다. 숙박·음식점업은 대표적인 서비스 내수 업종으로 꼽히는 만큼 현재 대한민국 내수 상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렇다고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국내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폭격'이 끊이지 않고 최근엔 이랬다 저랬다 '관세 변덕'이 잦아지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최근 트럼프는 전 세계 주요 무역국을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지만 다시 90일간 유예(중국 제외)를 발표했고, 그 이후엔 상호관세 품목이던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반도체 제조장비 등을 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다시 아예 제외한 건 아니다고 말을 바꿨다. 트럼프는 반도체에 품목별 관세를 물리겠다고 했는데 "그 답을 14일 주겠다"고 했다.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변덕'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 정부와 기업으로선 뚜렷한 대안을 내놓기가 어려워지고 전반적인 경제 위기감도 한층 더 높아지는 분위기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1일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유예 조치에도 미·중 관세분쟁 심화, 품목별 관세 지속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며 금융시장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우리 경제는 내수 부진이 전혀 해결되지 못해 취약한 상태로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이 더해지면 기업의 위기가 가속화될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국내 생산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하고 있는 모습"이라면서도 "소비나 건설투자 등 내수 회복은 지속적으로 불안함을 보이는데 대외 불확실성으로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그나마 이달 10일까지 수출이 13% 이상 늘어나며 2월부터 시작된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4월 1~10일 수출은 18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7% 증가했다. 조업일수는 8.5일로 전년 동기간보다 1일 많아 일평균수출액 21억9000만달러로 0.3% 늘었다.품목별로 보면 석유제품(-3.9%), 컴퓨터 주변기기(-14.1%) 등은 줄었으나 반도체(32.0%)와 승용차(11.9%), 자동차부품(10.5%) 등에서 올랐다. 국가별로는 미국(-0.6%) 등에서 감소했지만 중국(8.8%)과 유럽연합(EU·30.6%), 베트남(14.3%), 일본(0.7%) 등에서 증가했다. -
- ▲ 자동차 수출 ⓒ연합뉴스
◇믿을 건 기업뿐 … 규제개선→투자·고용확대→내수확장 '선순환' 만들어야지속적인 내수 침체에 더해 미국발(發)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규제를 개선하고 인센티브를 확대해 우리 기업의 수출 증대와 생산 확대 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과도한 근로시간 규제와 징벌적 상속세 등을 느슨하게 해 기업 운용을 돕고 고용·내수 확장이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우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표방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고, 주 52시간 규제로 생산성이 낮은 실정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 0.5%로 급감했으며 노동생산성도 OECD 회원국 37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산업 현장과 괴리감이 있는 주 52시간 규제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2월18일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주 52시간 제한은 어느 선진국에서도 국가 연구개발 인력자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며 "반도체뿐 아니라 어떤 연구자도 이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산업계는 우선 연구개발(R&D) 직군에 한해서라도 주 52시간 규제를 풀어달라고 정치권에 호소하고 있으나, 해당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은 여야 입장차가 큰 데다 최근 정치권의 혼란으로 국회에서 현재로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또 사실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상속세를 완화해 과도한 규제가 기업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최고세율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번째로 높은 50%다. 대주주의 경우 상속평가액에 가산세를 물리고 있어 최대 60%의 상속세를 내야 해 사실상 OECD 회원국 중 1위에 해당한다.과도한 상속세로 기업 경영을 포기하거나 집안 다툼으로 번지는 사례도 최근에 다수 발생했으며 상속세가 제로(0)인 싱가포르 등 해외로 국적을 옮기는 사람이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행 상속세는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는 만큼 자산의 해외 도피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정부도 이같은 국민들의 상속세 부담을 고려해 현행 '유산세'에서 물려받은 만큼만 상속세를 내도록 하는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상속세 체계 손질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자본자산의 매각에서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에 대한 조세인 자본이득세를 중장기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은 "상속받은 재산에 세금을 물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상속세를 점차 내리다가 폐지를 검토하는 등 해외 사례처럼 점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나아가 중대재해 발생 시 CEO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징역형과 벌금형이 동시에 처해질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관세 협상을 해야 할 지금이 적기라는 의견도 있다. 국제 표준과 크게 벗어난 기업 규제가 향후 고질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될 경우 미국의 고관세 부과를 초래하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재계를 위축하는 법안들은 수출과 내수에 큰 축을 맡는 기업들의 활동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미국의 관세율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이에 조기 대선을 앞두고 관심이 쏠리는 정치권에서 기업 규제 완화를 위한 스피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된다.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입법의 키를 쥐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대선 앞 밀려 있는 경제·민생 입법 과제를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야가 최근 배우자 상속세 공제라는 합의점에 도달했던 만큼 이것을 교두보로 삼아서 전반적인 상속세 체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우리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야당이 전향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