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기술협의서 본격화…새 정부 관세 협상서 주요 쟁점 부상산업·안보 맞닿은 사안 다수…국내 여론과 충돌 가능성 제기
  • ▲ 미국산 쇠고기 관련 사진. ⓒ뉴데일리DB
    ▲ 미국산 쇠고기 관련 사진. ⓒ뉴데일리DB
    미국이 한미 간 무역 협의 과정에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 규제 완화,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허용 등 한국의 주요 비관세 장벽 완화를 공식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 같은 요구가 향후 관세 협상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국내 여론과의 충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5월 20∼22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2차 기술 협의에서 균형 무역, 비관세 조치, 경제 안보, 디지털 교역, 원산지, 상업적 고려 등 6개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개선 요구 사항을 한국 측에 전달했다.

    특히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발표한 '2025년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에 포함된 내용이 이번 협의에서 주요 의제로 공식 논의됐다.

    미국은 비관세 장벽의 대표 사례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지목했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연계된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집권 초 '광우병 파동' 이후 국민 여론을 고려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국내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급속히 확대됐다. 한미 FTA 발효 첫해인 2012년 5억2200만 달러였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2023년 22억4300만 달러로 약 330% 증가했으며, 전체 대미 수입액 대비 비중도 1.2%에서 3.1%로 3배 가량 상승했다.

    2026년부터는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도 전면 철폐될 예정으로,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한국의 수입 제한 조치를 '과도기적' 조치로 간주하며 이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신 NTE 보고서에서는 해당 조치가 16년간 유지돼 온 문제라고 지적했으며, 월령과 관계없이 육포·소시지 등 일부 가공육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점도 문제 삼았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데일리 DB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데일리 DB
    미국은 또 다른 핵심 요구 사항으로 LMO 농산물 수입 규제 완화를 들었다.

    현재 한국은 식품·의약용 LMO 수입에 대해 승인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비승인 품목의 수입과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검역 절차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농촌진흥청이 미국 심플롯사의 LMO 감자에 대해 재배환경 위해성 협의에서 '적합' 판정을 내린 것을 두고, 일부 농민 단체는 한미 통상 협상을 의식한 결정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디지털 교역 분야에서는 구글이 요청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축척 5000:1)의 국외 반출 문제가 다시 거론됐다. 구글은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반출을 공식 요청했으나, 정부는 군사기지 등 보안시설이 포함된 지도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유출될 위험이 있다며 불허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국내 구글 지도 서비스는 축척 2만5000:1 수준으로 제한돼 있으며, 실시간 길안내 등의 기능이 제공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고정밀 지도 반출이 허용될 경우 자율주행, VR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공간정보가 해외 기업에 집중돼 국내 산업 주권과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당초 지난달 중순까지 반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오는 8월로 결정을 유보한 상태다.

    미국의 이 같은 요구는 향후 제3차 기술 협의와 관세 협상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이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주요 품목 관세 협상과 비관세 장벽 완화를 연계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의 전략적 대응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전문가들은 영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영국은 미국산 쇠고기와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자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일부 관세 인하를 이끌어냈다.

    한 전문가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는 미국 내 유통 비중이 낮아 개방하더라도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크지 않다"며 "대신 주요 산업 제품에 대한 관세 철폐나 인하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처럼 쇠고기 이슈가 사회적 혼란으로 번지지 않도록 국민 건강과 과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여론을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