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주 4.5일제 및 노란봉투법' 추진 예고노동정책 대 전환 … 노사 임단협 협상 난항 예상현대차·HD현대중 등 정부 정책 업고 협상력 키워관세폭탄·내수 부진에 노조리스크까지 '첩첩산중'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민주노총-더불어민주당 대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민주노총-더불어민주당 대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201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좌파 정부의 기세를 등에 업고 엄청난 위력을 과시했다. 전례 없는 좌파적 노사 정책이 펼쳐졌고, 이 와중에 최저금은 1만원 등 소득주도성장이 펼쳐지면서 대기업은 물론 자영업자들은 벼랑에 몰렸다. 

    다시 좌파 정부가 탄생하면서 재계는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 등 좌파적 정책 때문 만은 아니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중심으로 한 대외 한파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노동계도 어느 때보다 강한 입김을 드러낼 것으로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출범으로 노동계 ‘하투(夏鬪)’가 어느 해보다 격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윤석열 정부 당시 이른바 '건폭(건설노조 폭력)과의 전쟁'을 펼치면서 숨을 죽여 왔다. 하지만 올해 기업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 본격화한 가운데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노동계가 염원하는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 등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자 숨은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친노조 정책과 맞물린 노사 갈등 극대화로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 환경이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혔던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재추진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노란봉투법과 함께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 4.5일제’와 ‘포괄임금제 폐지’, 노동계의 강력한 요구사항이던 ‘정년 연장’도 속도감 있게 추진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불법 파업에도 '속수무책' … 노조, 불황에도 역대급 요구안 내놔

    노란봉투법은 파업 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제한해 노동자의 파업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수차례 거부권이 행사되며 좌절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이를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늘 강조해왔다.

    사용자, 노동쟁의 범위 확대, 노조의 손해배상책임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는 경우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노란봉투법이 협력업체 생태계 훼손과 사용자 고유의 경영권 침해, 파업 만능주의 확산 등 부작용을 야기해 산업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대통령이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겠다”며 공언한 주 4.5일제, 포괄임금제 폐지도 논란의 소지가 상당하다. 임금을 유지한 채 4.5일제를 도입하면 생산성 저하와 인건비 증가로 이어져 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고, 연장근로 시간과 관계없이 고정된 급여를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한다면 기업 경영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어서다.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늘리는 정년 연장도 노동계의 강력한 요구사항이었던 만큼 연내 추진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영계는 직무급제 등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늘리면 기업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청년 고용에 악영향을 준다며 퇴직 후 재고용 등을 주장해왔지만 일률적 법정 정년 연장이 유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정책의 대대적인 전환 속에서 노사 간 임단협 협상도 험로가 예상된다. 노동계는 미국 관세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상황에서도 대선에 앞서 7~8%대 높은 임금인상과 정년 연장 등 강력한 요구안을 제시했다. 노동계가 이 대통령의 친노조 정책을 등에 업고 협상력을 강화하며 투쟁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28~29일 열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금속노조 지침)과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내용으로 하는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아울러 통상임금의 750%인 상여금을 900%로 인상하고, 직군·직무별 수당을 인상 또는 신설하는 안도 요구안에 포함됐다.

    현대차 노조는 정년을 현재 60세에서 국민연금 수령 개시 전년 연말(최장 64세)로 연장하고, 정년 연장을 이끌기 위한 포석으로 기존 35년까지이던 장기근속자 포상 기준에 40년 근속을 신설하는 안도 마련했다. 또 임금 삭감 없이 금요일 근무를 4시간 줄이는 주 4.5일제 도입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철수설이 불거진 한국GM 노조도 기본급을 14만1300원 인상하는 동시에 당기순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통상임금의 500%를 격려금으로 지급하는 요구안을 마련했다. 이러한 요구안이 현실화할 경우 1인당 6000만원이 넘는 성과급과 격려금이 지급돼야 한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노조는 각각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안을 만들어 임단협 교섭에 나섰다. 지난해 수준의 성과급 및 격려금에 더불어 한화오션은 120만원의 하계 휴가비 지급을 요구안에 추가됐다. 이들 노조는 정년 만 65세 연장, 임금피크제 폐지 등도 함께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 포스코와 대한항공 노조도 기본급 7.7% 인상을 포함한 요구안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 노조도 임금 8.25% 인상, 연봉 상한선 상향, 초과이익분배금(PS) 배분율 상향 및 상한 폐지 등을 요구 중이다. 아울러 차량 유지비·유류비 등 통상임금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층 강화된 노조의 요구에 사측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미국 고율 관세로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안을 제시하는 노조와 합의 불발 시 회사는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대법원이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결로 기업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며 “여기에 고율의 임금인상과 정년 연장 요구는 사측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내외 불확실성을 감안해 노사의 대승적 합의가 필요할 때”라고 토로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노총 정책협약식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노총 정책협약식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뉴시스
    ◇'성과급 통상임금 포함' 굳어지나  … 연 7조 인건비 더 나가

    부산시 버스운송사업조합과 노조와의 지난달 협상에서 도출된 성과급을 기본급으로 포함하는 합의는 올해 임단협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노사는 정기상여금과 하계휴가비를 폐지하고, 이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이를 반영해 내년부터 총임금은 10.48% 인상되며, 정년도 63세에서 64세로 1년 연장된다.

    이번 개편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통상임금 논의에 선례로 남게 됐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한 이후 첫 임금체계 개편 사례다. 당시 판결은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이를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특히 성과금 규모가 큰 IT·반도체·전자 기업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성과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수당과 퇴직금에도 영향을 미쳐 인건비 관리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예컨대 지난해 23조5000억원이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거둔 SK하이닉스의 경우 기술직 노조가 임금 8.25% 인상과 초과이익분배금(PS) 배분율 상향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직원 1년 연봉에 육박하는 성과금이 나오는 반도체 기업 특성상 이를 통상임금에 산입하면 기업 재무에는 상당한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총에 따르면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기업들은 연간 약 6조8000억원의 추가 인건비를 부담할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기업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한 가운데서 임금 부담이 더 가중되는 경우 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대법원이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결로 기업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며 “여기에 고율의 임금인상과 정년 연장 요구는 사측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내외 불확실성을 감안해 노사의 대승적 합의가 필요할 때”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