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7년 만 파업… 노사 쟁의 지형 달라져조선 3사·한국GM, 금융권까지 연쇄 추투 예고합병·자산매각 등 경영상 결정도 쟁의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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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및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에서 점거농성 중인 모습ⓒ뉴시스
노란봉투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시행 시점까지 확정되면서 사회 전반에서 노사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금융·산업 등 다수 기업들에서 앞다퉈 파업에 돌입하거나 예고하는 등 올가을 추계투쟁 수위가 급격히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3일부터 사흘간 부분 파업에 돌입한다. 지난해까지 이어온 ‘6년 연속 무분규’의 기록이 끊겼다. 경제계는 “7년 만에 재개된 현대차 파업이 올가을 산업 전반의 ‘추계투쟁’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회가 통과시킨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이후 비정규직 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 요구, 원청 노조의 경영상 결정 반대 등 쟁의 지형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현대차 노조는 전날 사측과의 20차 교섭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파업을 결의했다. 3일과 4일에는 출근조별 2시간, 5일엔 4시간의 부분 파업을 진행한다. 생산직 외 판매·연구직도 ‘총량(총파업 시간)을 맞추는’ 방식으로 현장 상황에 따라 부분 파업에 나선다. 울산공장 기준 시간당 375대 생산 규모를 감안하면 하루 평균 1500대 안팎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핵심은 임금 인상폭과 정년 연장이다. 회사는 20차 교섭에서 월 기본급 9만5000원 인상, 성과금 400%, 별도 1400만 원, 주식 30주, 일부 수당의 통상임금 확대를 골자로 하는 2차 제시안을 냈다. 노조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전년 순이익의 30% 성과급, 정년 64세, 주 4.5일제, 상여 인상·분배 공정 등을 요구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관세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사측 논리와 “영업이익 14조원대 실적에 걸맞은 보상”을 주장하는 노조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노사는 올해 들어 6월 18일 상견례 이후 20차례나 마주 앉았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사측은 “정년은 정부·정치권 논의의 대상”이라며 협상 안건이 아니라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대표 제조기업이 시대적 과제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
- ▲ 현대자동차 노사 대표가 지난 6월 울산공장에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상견례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노조법에 막힌 마스가… 경영판단도 파업 명분파업의 불씨는 조선으로 번졌다.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 합병 발표 이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현대미포조선 노조는 “노조와 사전 협의 없는 전격 발표”라며 공동 투쟁을 선언했다. 2·3일 4시간, 4·5일 7시간씩 작업을 멈추는 부분 파업에 돌입했고, 다음달 추가 공동 파업도 예고했다.노조는 합병 세부자료 공개와 고용보장책을 요구한다. 사측은 “HD현대미포를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중심 조선소로 탈바꿈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상태다. 실제로 노조는 노란봉투법이 쟁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으로까지 넓힌 것을 앞세워 노조의 공식 쟁의의제로 올릴 기세다.회사의 경영 판단이 파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한국GM 등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한국GM 노조는 인천 부평공장 유휴부지와 국내 직영 서비스센터 매각 방침에 반대하며 3일까지 특근 거부와 4시간 부분 파업을 이어간다. 당기순이익의 15% 성과급 등 보상체계 요구와 함께 “고용안정과 국내 생산물량 유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역시 ‘자산 매각’이라는 경영상 판단을 둘러싼 새로운 전선이다.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올해에만 9차례 파업으로 파장이 컸다. 6월 말 약 2000억 원 규모의 은행 대출금 조기상환과 단일 은행 대환 과정(연간 영업이익 1% 수준 비용 부담)을 두고 노조가 반발, 임단협 쟁점과 겹치며 파업이 반복됐다. 그 여파로 현대차 ‘캐스퍼’ 생산 물량은 전년 월평균 2,800여대에서 올해 600여대로 급감했고, 내수용 ‘캐스퍼 EV’도 월 1,000대 수준에서 7월 640대로 내려앉았다.원청 향한 하청의 파업… "직접고용 해달라"노동 쟁점은 철강으로도 확산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원청 현대제철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집단행동 중이다. 전·현직 대표는 물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까지 부당노동행위로 고소, ‘사용자 범위’를 그룹 전반으로 넓혀 해석한 사례다.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한 노란봉투법의 취지가 현장에 투영된 셈이다. 포스코 노조는 임금 7.7% 인상을 요구하며 회사 제시안을 거부했고, 창사 57년 만의 첫 파업 검토 수위로 올라섰다.전국건설노조 수원 남부지부는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 장기 집회를 이어가는 중이다. 쟁점은 SK에코플랜트가 시공 중인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현장의 고용 문제다. 노조는 협력업체가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을 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건설현장이나 시공사 본사가 아닌 ‘그룹 본사’를 집회 무대로 삼은 배경엔 원청 책임 강화가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수많은 협력사의 개별 고용에 원청이 개입하라는 건 명백한 경영 간섭”이라고 선을 그었다. 건설노조는 17일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 기자회견 후 이튿날 총파업을 선포할 계획으로, ‘현장 셧다운’ 우려가 커진다.금융권도 끓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9월 1일 실시한 찬반투표에서 찬성 94.98%로 26일 총파업을 가결했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시중은행·산업은행·신용보증기금·캠코 등 소속 노조원들이 동시다발로 업무를 중단한다. 금융노조는 3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 앞 결의대회에서 주 4.5일제 도입, 정년 연장, 5% 임금 인상, 신규 채용 확대를 공식 요구한다. ‘화이트칼라’ 영역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정년 이슈가 한꺼번에 올라오며 노사 교섭의 난도가 높아졌다. -
- ▲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의결됐다ⓒ연합뉴스
들끓는 추투… 사회적 합의 없는 법시행이 문제이번 연쇄 파업의 공통분모는 노란봉투법이다. 쟁의행위 범위를 임금·근로조건에 한정하지 않고 구조조정, 정리해고, 사업 통폐합 등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으로 넓혔다. 동시에 사용자 범위를 확장하면서 하청·비정규직의 원청 상대 교섭과 원청 경영 판단에 대한 노조의 쟁의가 제도적으로 가능해졌다. 산업현장에선 “교섭의 판도가 구조적으로 바뀌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면서 ‘교섭력의 비대칭’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반대로 노동계는 “그간 경영상 판단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 구조조정과 전환배치가 이뤄졌다”며 “이제야 사회적 통제 장치가 마련됐다”고 맞선다.문제는 노사 갈등으로 사회 시스템 마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 파업은 곧장 생산 차질로 이어지고, 조선의 부분 파업은 수주·인도 일정과 직결된다. 금융권 총파업은 창구 업무·결제·여신 심사 등 실물경제의 순환을 흔들 수 있다. 특히 HD현대의 ‘마스가’ 대응과 같은 대외 협력 어젠다는 ‘안정된 노사관계’가 전제인데, 파업의 가속은 정부·기업 모두에게 외교·통상 리스크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 당장은 1차적인 제조업에서 파업이 시작되고 있지만, 삼성전자 등 IT·반도체로까지 불씨가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은 조만간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과 비공개 회동을 갖고 노동현안을 논의한다. 경사노위 기능 개선과 함께 산업별·지역별 다층 대화를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미 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6개월 뒤 시행만 앞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재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경제계가 반드시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지점들이 모조리 파업의 명분으로 치환되고 있다"면서 "당분간 사회적 혼란과 이에 따른 국민불편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