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원·주금공·신보·예보·캠코, 노동이사 임기 종료 후에도 연쇄 공백노조는 "후보 추천 다 끝냈다"는데 금융위는 뒤늦게 절차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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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정부가 123대 국정과제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확대·활성화를 올려놓았지만, 정작 금융위원회 산하 핵심 금융 공공기관들에서는 노동이사 교체 인사가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법으로 노동이사를 의무화해 놓고도 첫 임기 종료 이후 후임 선임을 제때 하지 못하면서 제도 설계 단계부터 우려됐던 ‘경영 부담만 키우는 규제’라는 비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노동계는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까지 된 제도를 정부가 스스로 소홀히 대한다”며 국회 차원의 운영 실태 점검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제·금융권에선 “처음부터 정치적 상징성을 앞세워 법에 박아 넣은 제도를 시장과 기관이 떠안고 있는 것”이라는 냉소 섞인 평가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법으로 강제한 노동이사제 … 금융위 산하 5곳 첫 임기 끝나도 ‘질질’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추진돼 2022년 1월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개정 공운법은 공기업·준정부기관 이사회 비상임이사 중 1명을 재직 근로자로 선임하도록 의무화하고, 이 노동이사에게 다른 비상임이사와 동일한 의결권을 부여했다. 법은 2022년 8월 4일부터 시행됐다.

    금융권에서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서민금융진흥원,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 등 정책·서민금융을 담당하는 공공기관들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기술보증기금은 노동이사 임기가 아직 남아 있고, 나머지 5곳은 올해 들어 1기 노동이사 임기가 이미 끝난 상태다.

    기관별 첫 임기 만료 시점은 서민금융진흥원이 2025년 1월, 주택금융공사가 2025년 2월, 신용보증기금이 2025년 5월, 예금보험공사와 캠코가 2025년 7월이다. 공운법상 노동이사 임기는 2년이며 1년 단위 연임이 가능하다. 후임이 임명될 때까지 기존 노동이사가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어 법적 공석은 아니지만, 서금원은 임기 만료 후 10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주금공 역시 9개월 넘게 후임 선임이 지연되는 등 기본적인 인사·임기 관리조차 매끄럽지 못한 모습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2025년6월)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이 스스로 설계해 밀어붙인 제도임에도 집권 이후에는 관리·집행 책임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는 후보 다 뽑았는데 … 금융위 신호 없어 멈춰”

    금융위원회 산하 한 금융공공기관 관계자는 “노조가 내부에서 1·2순위 후보를 정해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 올릴 준비까지 마쳤지만, 금융위에서 ‘선임 절차를 진행하라’는 신호가 오지 않아 절차를 시작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과반수 노조가 있는 기관의 통상적인 절차는 △노조가 1·2순위 노동이사 후보를 정해 임추위에 추천하고 △임추위가 복수 후보를 금융위에 상신한 뒤 △금융위원장이 이 가운데 1명을 노동이사로 임명·통보하는 구조다.

    이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노동이사제 관련 인사 관리가 사실상 손 놓인 상태에 가깝고, 노조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최근에야 금융위가 임기가 끝난 산하 기관들에 선임 절차를 진행하라고 한 것으로 안다”며 “임기가 끝났으면 연임 여부를 명확히 하거나 후임자를 제때 뽑을 수 있도록 주무부처가 미리 기준과 일정표를 갖추는 것이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도입 땐 “노동존중·경영투명” 내세웠지만 … 남은 건 운영 혼선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 “노동존중 사회”를 내걸고 밀어붙인 대표 제도다. 공운법 개정 당시에는 공기업·준정부기관 130곳이 노동이사제를 의무 도입해야 했지만, 2022년 공공기관 분류 조정 과정에서 대상 기관은 88곳으로 축소됐다.

    재계는 도입 초기부터 일관되게 경영 자율성 침해, 의사결정 지연 가능성 등을 우려해 왔다. 노조 출신 또는 노조 추천 인사가 비상임이사로 들어와 의결권을 행사하면 노사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공기업 구조조정·인력 정비·비용 절감 같은 민감한 의사결정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번 금융위 산하 기관 사례가 노동이사제 전반의 운영 미비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주장한다. 금융권 한 노조 관계자는 “금융위 산하 5개 기관만 봐도 1기 임기가 끝난 뒤 2기 선임이 우후죽순·제각각 진행되고 있다”며 “다른 주무부처 산하 공공기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임기가 지났는데도 후임 노동이사를 제때 뽑지 않는 관행이 반복되면 노동이사제는 ‘법과 국정과제에만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다”며 “정부가 노동이사제 확대를 계속 이야기할 생각이라면, 먼저 임기 만료 전에 선임 절차를 시작하고 연임·교체 기준을 투명하게 정리하는 가이드라인부터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