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즉시진입' 제도 두고 안전불감증 우려 신의료기술평가 생략 … "환자가 베타테스터인가"규제 완화의 대가, 환자 안전·비용 부담으로 전가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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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성이미지
    정부가 인공지능(AI) 의료기기와 의료용 로봇 등 첨단 기술을 최단기간에 의료 현장에 투입하는 '시장 즉시진입' 제도를 전격 시행했다. 규제 혁파를 통한 산업 육성과 환자의 치료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의료계와 환자 사회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확산과 의료비 폭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6일부터 이 제도를 공식 가동했다. 국제 수준의 임상평가를 거친 혁신 의료기기는 최장 490일이 걸리던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최단 80일 만에 의료현장에 투입된다. 

    이번 조치는 AI 소프트웨어, 체외진단기기, 의료용 로봇 등 우선 199개 품목을 정조준했다. 기술 발전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우수한 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산업계는 "디지털 의료기기는 현장의 빠른 피드백이 생명"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80일이라는 속도에 가려진 안전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식약처 허가가 기기의 기능적 정상 작동을 확인하는 절차라면 신의료기술평가는 실제 환자에게 썼을 때 임상적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마지막 보루다. 이 단계를 생략하는 것은 환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베타 테스트'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고가 비급여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시진입 의료기술은 상당 기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채 비급여로 사용될 예정이다.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은 기술은 급여 등재 논의 자체가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 공백 기간 동안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몫으로 돌아간다.

    실제 환자는 해당 기술의 임상적 유효성과 위험을 충분히 검증한 공적 평가 결과를 접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혁신 기술', '최신 장비'라는 설명만을 근거로 고가 비급여 치료를 권유받게 된다. 

    병원 입장에서도 고가의 AI 장비나 로봇 수술기기는 도입 비용이 막대한 만큼 비급여를 통해 비용 회수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선도입–비급여 확산–사후 검증'이라는 흐름이 고착될 경우 의료비 상승 압박이 환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는 "검증이 끝나지 않은 기술이 비급여로 깔리면 환자는 생명 안전의 위험과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짊어지게 된다"며 제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 환자가 법적 분쟁의 피해까지 떠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후 퇴출의 함정 … '사후약방문'식 대처 

    정부는 부작용 발생 시 장관 직권으로 기술을 퇴출하는 사후 관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의료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다.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뒤에 기술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의료 현장의 시각도 복잡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신속 도입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환자 안전과 직결된 항목에 신의료기술평가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의료진에게도 상당한 부담"이라며 "주기적으로 진행된 안전성 검증 절차가 담보되지 않은 채 사후 퇴출만 걸어둔 것은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털어놨다.

    물론 '80일 속도전'은 분명 한국 의료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도가 환자의 생명권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것이 환자단체의 주장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정부가 강조하는 혁신이 시장의 논리에만 매몰되지 않으려면 비급여 남용을 막을 엄격한 가이드라인과 사고 발생 시의 즉각적인 보상 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도 시행의 성패는 얼마나 빨리 들여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환자를 안전하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사후관리라는 명분 아래 감시망이 느슨해지면 의료현장은 혁신의 장이 아닌 위험의 각축장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