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 2.1조·새마을금고 5.3조 초과…총량 페널티 현실화주담대 한 달 새 1.5조 감소, 실수요 먼저 닫힌 대출 창구요구불예금 22조 이탈 … 막힌 대출, 열린 투자취업 의사 없는 청년 45만명 … 대출 규제의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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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이 되면 대출 창구가 닫히고, 연초가 되면 관리 중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가계부채 총량을 잡겠다는 명분 아래 매년 되풀이되는 장면이다. 올해는 강도가 더 세다. 목표를 넘긴 금융사에 신규 대출 한도에서 초과분을 깎는 '총량 페널티'가 예고되면서다. 정책은 숫자를 겨냥하지만, 정작 대출을 필요로 하는 무주택 서민과 청년, 자영업자같은 실수요자에게 전가되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해 가계대출이 2조 1270억원 늘며 목표치(2조 61억원)를 웃돌았고, 새마을금고는 증가액이 5조 3100억원에 달해 당초 목표의 4배 이상을 초과했다. 원칙대로라면 새마을금고는 올해 상환되는 대출 범위 안에서만 신규 취급이 가능해 순증 기준으로는 사실상 대출이 막히는 구조다. 서민·저신용 차주 비중이 높은 곳에서 가장 강한 제재가 작동하는 셈이다.

    총량 규제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함이다. 상환 능력, 대출 목적, 차주의 위험도는 뒷전이고 연간 숫자만 본다. 금융당국은 올해도 가계대출 증가율을 명목 GDP 성장률 이내로 묶겠다고 했다. 지난해 은행권 증가율이 1.8%였으니 그보다 더 낮게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숫자 관리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위험한 대출을 가려내기보다, 신규 대출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쉽다.

    그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최근 한 달 새 1조 4800억원 줄어 610조원 수준으로 내려왔다. 가계대출 잔액도 두 달 연속 감소했다. 반면 요구불예금은 한 달 만에 22조원 넘게 빠졌고, 투자자예탁금은 100조원을 넘어섰다. 집을 사거나 전세를 구하려는 대출은 막히고,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금융투자로 자금이 이동하는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

    피해는 계층별로 더 뚜렷하다. 무주택자와 청년, 자영업자가 먼저 밀려난다. 주담대 금리는 혼합형 기준 연 4.1~6.4%까지 올라 있고, DSR 규제와 한도 제한은 그대로다. 연초에 대출 창구가 열렸다는 말은 형식적일 뿐, 실수요자들이 '감당 가능한 대출'은 더 멀어졌다는 지적이 높다.

    청년층의 상황은 더 냉혹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취업 의사가 없는 '쉬었음' 청년은 45만명으로 6년 새 16만명 넘게 늘었다. 장기 미취업과 소득 불안이 겹친 상황에서 대출 문턱까지 높아지자 청년층은 주거·창업·재기 선택지 모두에서 밀려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청년 ISA, 자산형성 지원, 포용금융 확대 등을 내세우지만 현장에서는 "원론적 처방에 그친다"는 냉소가 나온다.

    시장에서도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명분에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총량 숫자만 맞추는 방식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은 큰 상황이다. 초과분에 대한 책임을 묻되, 상환 능력과 대출 목적을 구분하는 질적 관리로 전환하지 않으면 같은 장면은 매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 역시 가계부채 관리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총량 규제가 단기적으로 숫자를 낮출 수 있지만, 실수요까지 동시에 조이면 소비·주거·노동시장에 연쇄적인 위축을 낳는다는 점에서다. 결국 그 부채는 성장률과 사회 비용으로 되돌아온다고 경고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과 상호금융권에 일률적인 총량 페널티만 적용하면 연말마다 창구가 닫히고, 무주택 서민·청년·자영업자 등 실수요자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며 "상환 능력과 대출 성격을 세밀히 구분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총량 규제는 가장 쉬운 관리 방식이지만, 가장 나쁜 정책 신호를 남긴다"며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대출을 막는 정책이 아니라 소득과 고용을 키우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