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아일랜드·미국 사례가 보여준 '부실 동시 표면화'정치 신호 뒤 연장 위축, 은행 유동성·신용공급 흔들임대료 전가·사회적 비용 … 정책 후퇴로 이어진 전례건전성 강화 명분 속 금융권은 '속도 조절' 요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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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발언 이후 다주택자 대출 연장 규제가 급물살을 타자, 금융권에서는 해외 사례를 들어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출 연장을 '버티기용 관행'으로 규정하고 한꺼번에 차단할 경우 신용 리스크가 정리되기보다 유동성 부담이 먼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2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전 금융권을 상대로 다주택자 대출의 만기 구조와 연장 관행을 점검하고, 기존 대출의 원금을 1~2년 내 단계적으로 회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5대 은행의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올해 1월 말 기준 36조 4686억원으로, 2년 전보다 약 130% 늘었다. 당국은 이 대출이 사실상 '버티기용 레버리지'로 작동해 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연장 관행을 갑작스럽게 끊은 정책이 금융권에 직접적인 충격을 남긴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의 경우 지난 2020년 시진핑 주석이 "주택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꺼낸 이후 부동산 대출의 신규 취급은 물론 만기 연장까지 사실상 차단했다. 이른바 '3대 레드라인' 규제는 레버리지를 급격히 축소시키며 헝다·비구이위안 등 대형 개발사의 연쇄 유동성 위기를 촉발했다. 

    이 과정에서 미상환 채권과 프로젝트 중단이 급증했고,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높은 지방 은행과 농촌상업은행을 중심으로 부실채권(NPL) 비율이 빠르게 상승했다. 일부 지방 금융기관의 부동산 익스포저는 자기자본 대비 150~200%에 달했으며,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하락과 대손충당금 급증이 동시에 나타났다. 

    미국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업용 부동산(CRE) 대출에서 이른바 '만기 연장 후 문제없는 척하기(Extend & Pretend)' 관행을 줄이도록 규제당국이 압박했다. 연준과 FDIC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만기 도래 CRE 대출의 손실 인식을 앞당겼고,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은행의 CRE 익스포저가 자본 대비 200~300%에 달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연장 축소와 충당금 적립 확대로 지역은행들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단기간에 수십 bp((1bp=0.01%포인트) 하락했고, 유동성 지표 역시 악화되며 CRE 관련 대출 잔액이 수년간 감소세를 이어갔다. 부실을 조기에 드러내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단기적으로는 지역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신용 경색 우려를 증폭시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일랜드 역시 금융위기 이후 '좀비 대출'을 정리한다는 명분 아래 부동산·기업대출의 만기 연장 관행을 사실상 폐기했다. 2014년 이후 연장은 신규 취급과 동일한 재심사를 거치도록 하면서 기존 대출에 대한 원금 회수가 단기간에 집중됐다. 그 결과 은행권 총대출 잔액은 위기 전 정점 대비 약 40% 안팎 축소됐고, 상업용 부동산 관련 대출은 수년간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NPL 비율은 빠르게 하락하며 자산 건전성은 개선됐지만, 신용 공급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이 급감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당시 주요 은행들의 예대율과 LCR은 규제 기준을 상회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출 축소 충격으로 실물경제 회복이 지연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연장 차단이 곧바로 신용 리스크의 '정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체율은 일시적으로 낮게 유지되더라도, 만기 도래 물량이 특정 시점에 몰리며 은행의 유동성 관리 부담과 자본 소모가 급증하는 경로를 밟았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유동성 쇼크'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권은 아직 자본 여력과 담보 가치 측면에서 완충 장치가 남아 있다고 진단한다. 다만, 이자상환비율(RTI) 재적용이나 만기 연장 시 대규모 원금 상환이 '연장=신규' 취급처럼 작동할 경우 충격은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다주택자·임대사업자·자영업자 대출이 동시에 압박을 받을 경우 은행권은 대손 부담과 함께 신용 공급 위축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

    국내 한 거시금융 전문가는 "연장을 막는 정책은 건전성 측면에선 명분이 있지만, 해외 사례를 보면 충격 관리가 더 큰 과제가 됐다"며 "속도와 범위를 잘못 잡으면 구조조정보다 유동성 쇼크가 먼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연장 규제가 강화되면) 은행은 차주의 상환 능력보다 만기 구조와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리스크를 재평가해야 한다"며 "이는 특정 차주군의 문제가 아니라 은행권 대출 포트폴리오 전반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