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만원' 대신 '62만 BTC' … 단위 입력 실수에 60조원 오지급보유량 9배 넘는 금액 풀려 … 한때 15% 이상 시세 급락기술 투자 대신 수수료 장사 지적 … 거래소 구조적 한계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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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트코인 시세. ⓒ연합뉴스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60조원대 비트코인이 잘못 지급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하며 국내 암호화폐 거래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 단순 입력 실수로 볼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있지도 않은 자산이 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거세다.8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빗썸은 지난 6일 오후 7시쯤 고객 확보를 위한 랜덤박스 이벤트 보상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총 62만 개의 비트코인을 오지급했다. 당시 비트코인 시세를 적용하면 약 60조원 규모에 달하는 금액이다.이번 사고는 이벤트 참여자 695명 중 랜덤박스를 개봉한 249명에게 2000원~5만원씩, 총 62만원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지급 단위를 '원'이 아닌 '비트코인 개수'로 잘못 입력하면서 62만원 대신 62만 비트코인을 지급한 것이다.당첨자 1인당 평균 비트코인 2490개(약 2400억원 상당)가 지급된 셈이다. 이후 일부 이용자들이 이를 즉시 매도하면서 빗썸 원화시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15% 이상 급락했으며 한때 8100만원대까지 밀리는 패닉셀이 발생했다.빗썸은 사고 발생 약 20분 만에 거래 및 출금 차단 조치를 취했고, 7일 오전 기준 오지급된 비트코인의 99.7%를 회수했다고 밝혔다. 다만 회수 전 매도된 물량 일부는 시장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문제는 오지급 규모가 빗썸의 실제 보유 자산과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빗썸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회사가 직접 보유한 비트코인은 175개(174억원) 뿐이다. 같은 기간 이용자 위탁을 받아 빗썸이 대신 보관 중인 비트코인은 4만2619개, 6조9000억원 남짓이다.결국 회사 보유분과 회원 위탁분을 합쳐 7조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갖고 있는 빗썸이 금액 기준으로 약 9배, 수량 기준으로는 14배에 달하는 코인을 뿌린 것이다.거래소 내부 데이터베이스(DB)상 숫자 입력만으로 실재하지 않는 '유령 코인'이 생성·유통될 수 있었던 셈이다.인공지능·블록체인 전문가인 박재현 눈21(Noone21)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번 사고는 국내 거래소들의 기술적 나태함, 규제 당국의 방관,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된 산업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밝혔다.박 대표는 "전통 금융권에서는 평소 패턴을 벗어난 대규모 자산 이동이 발생하면 즉각 자동 셧다운이 작동한다"며 "빗썸에는 이상치 감지(outlier detection)나 자동 중단 트리거(일종의 서킷브레이커)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특히 수천 개의 비트코인이 이벤트 보상 명목으로 즉시 출금 가능한 핫월렛에 보관돼 있었다는 점은 자산 분리 보관과 승인 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박 대표는 이번 사고의 배경으로 국내 거래소의 기형적인 사업 구조도 짚었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인가제가 사실상 진입 장벽으로 작동하면서 거래소들이 기술 혁신보다는 대관·규제 대응과 수수료 수익 극대화에만 집중하게 됐다는 것이다.그는 "코인베이스가 자체 메인넷과 온체인 생태계를 키우는 것과 달리 국내 거래소들은 해외 코인을 유통하며 통행세를 받는 모델에 머물러 있다"며 "국내 프로젝트 육성에는 인색하면서 수수료 수익에만 급급한 역차별적 행태는 결국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강조했다.빗썸은 패닉셀로 손실을 본 투자자에게 매도 차액 전액과 추가 보상 10%, 사고 시간대 접속자 전원에게 2만원 보상, 7일간 수수료 0%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또 1000억원 규모의 고객보호펀드 상설 운영과 시스템 고도화도 약속했다.이재원 빗썸 대표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외형적 성장보다 고객의 신뢰와 안심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더욱 안전한 거래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시장에서는 '없는 자산이 거래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점검 없이는 신뢰 회복이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