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도네이로 문 열고 힐사이드 셀렉트로 정점 … 단계별 시음 흐름 압도엔트리부터 컬트까지 … 가격·구조 모두 다른 ‘완성형 라인업’릴렌틀리스 시라 … 장기 숙성형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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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 하우스 오브 신세계 와인셀러 PDR룸에서 열린 ‘쉐이퍼(Shafer) 와인 세미나’에서 소개된 와인들ⓒ신세계L&B
24일 오후 3시경, 서울 중구 하우스 오브 신세계 와인셀러 PDR룸에서 열린 ‘쉐이퍼(Shafer) 와인 세미나’는 잔을 채우는 순간마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자리였다. 화이트에서 시작해 나파 카베르네, 시라, 그리고 플래그십 와인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쉐이퍼가 쌓아온 시간과 철학이 단계적으로 펼쳐졌다.잔이 채워질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화이트로 시작해 점점 무게를 더해가는 흐름은 하나의 ‘코스 요리’처럼 설계돼 있었다.첫 잔으로 나온 '레드 숄더 랜치 샤도네이'는 이날 시음의 출발을 산뜻하게 열었다.나파밸리 카네로스의 레드 숄더 랜치 단일 포도밭에서 수확한 샤도네이 100% 와인으로, 샤퍼가 지속가능 농법을 일찍부터 실천해온 와이너리라는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라인이다.9개월 숙성 과정에서 40%는 뉴 프렌치 오크, 60%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활용해 과도한 오크 터치를 줄이고 품종 고유의 선명한 향을 살렸다.잔을 들자 흰 꽃과 레몬 제스트, 정향, 부싯돌 뉘앙스가 차례로 올라왔고, 입 안에서는 청량한 산미와 미네랄감이 균형 있게 받쳐주며 길고 깨끗한 피니시로 이어졌다. 화려하기보다 정교한 스타일의 화이트라는 인상이 강했다.두 번째로 만난 'TD-9 카베르네 소비뇽'은 샤퍼의 ‘입문용 레드’라는 표현이 어울렸다.이름은 와이너리 개간 당시 사용했던 첫 트랙터에서 따왔다.2022 빈티지 기준 카베르네 소비뇽 75%, 메를로 18%, 말벡 4%, 쁘띠 베르도 3%를 블렌딩했고, 100% 프렌치 오크에서 18개월 숙성했다. 향은 예상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블랙체리와 자두, 커런트 계열 과실 위에 모카, 타프나드, 트러플 같은 어두운 결의 향이 겹치며 ‘엔트리’라는 표현을 무색하게 했다.입 안에서는 풍부한 질감이 느껴졌고, 구조감도 탄탄했다. 가격 진입장벽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샤퍼가 추구하는 나파 스타일의 골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와인으로 읽혔다. -
- ▲ 레드 숄더 랜치 샤도네이ⓒ최신혜 기자
'원 포인트 파이브 카베르네 소비뇽'은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잔이었다. 이 와인은 존 샤퍼와 아들 더그 샤퍼, 즉 1세대와 2세대의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스택스 립과 나파의 여러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를 블렌딩하며, 자가 포도밭인 보더라인의 포도도 일부 포함된다. 2022 빈티지 기준 카베르네 소비뇽 92%, 메를로 3%, 말벡 2%, 쁘띠 베르도 3% 구성이다.실제 잔에서는 카시스와 자두, 블랙커런트가 중심을 잡았고, 향의 농도부터 확실히 달랐다. 앞서 말한 것처럼 레드 프루트보다 블루베리와 블랙 계열 과실의 존재감이 더 선명했고, 입 안에서는 풍성하면서도 두텁게 감기는 질감이 살아났다. 샤퍼가 왜 이 와인을 시그니처로 내세우는지 비교적 쉽게 납득되는 대목이었다.릴렌틀리스 시라는 이날 가장 개성이 분명한 와인이었다.시라 97%, 쁘띠 시라 3%로 구성됐고, 100% 뉴 프렌치 오크에서 28개월 숙성된다. 이 와인은 1994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30년간 샤퍼를 지켜온 엘리아스 페르난데즈의 집요함과 끈기를 기려 만든 와인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이름 그대로 강단이 있다.블랙베리와 자두, 바이올렛, 에스프레소 향이 짙게 깔리고, 입 안에서는 후추와 블랙베리 잼, 단단한 탄닌이 중심을 잡는다.‘힘이 센데 거칠지만은 않은 시라’다. 특히 후추 풍미가 있는 스테이크와의 마리아주 설명이 인상적이었고, 30~40년 이상 셀러 에이징이 가능한 구조를 갖춘 점에서도 단순히 화려한 한 잔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을 전제로 한 와인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
- ▲ ‘쉐이퍼’의 최고경영자(CEO) 크리스 에이버리가 시음을 돕고 있다.ⓒ신세계L&B
마지막에 나온 힐사이드 셀렉트 카베르네 소비뇽은 확실히 ‘정점’의 역할을 했다.스택스 립 디스트릭트 힐사이드 포도밭의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들고, 100% 프렌치 오크에서 28개월 숙성하는 샤퍼의 플래그십이다.로버트 파커 100점을 6차례 받은 전설적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잔에서는 블랙베리와 카시스, 블랙커런트 중심의 짙은 검은 과실 향이 먼저 올라왔고, 이어 초콜릿, 향신료, 젖은 흙 같은 복합적인 결이 뒤따랐다.입 안에서는 농도와 구조, 균형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맞물렸고, 피니시는 길고도 깊었다.전체적으로 이날 시음은 샤퍼의 포트폴리오를 단순히 가격대별로 늘어놓은 자리가 아니라, 화이트에서 시작해 엔트리 레드, 시그니처 카베르네, 리미티드 시라, 플래그십 카베르네로 올라가는 흐름 자체를 통해 브랜드의 층위를 체감하게 하는 자리였다.레드 숄더 랜치가 정제된 첫인상을 열고, TD-9가 진입장벽을 낮추며, 원 포인트 파이브가 샤퍼의 중심을 보여줬다면, 릴렌틀리스와 힐사이드 셀렉트는 이 와이너리가 왜 ‘나파 럭셔리’의 상징으로 불리는지를 설명하는 마침표에 가까웠다.업계에 따르면 레드 숄더 랜치 샤도네이는 국내에서 대체로 10만원대 초중반, TD-9 카베르네 소비뇽은 10만원대 중후반, 원 포인트 파이브 카베르네 소비뇽은 20만원대 중후반~30만원 안팎이다.릴렌틀리스 시라는 20만원대 후반~30만원대, 힐사이드 셀렉트 카베르네 소비뇽은 80만원 안팎에서 100만원대에 형성돼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분명히 했다.크리스 에이버리 쉐이퍼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 잘 만들 것인가”라며 “와인은 시간과 기다림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진정한 와인메이커는 과학자를 넘어 아티스트가 돼야 한다”며 “기술이 아니라 철학과 균형이 명품 와인을 만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