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가격 상승에 API-포장-물류까지 비용 치솟아포장재 대체 어려워 병목 가능성 … 공급 차질 리스크재고 확대-선발주 대응 … 현금 묶이며 재무 부담 확대약가 규제에 가격 전가마저 제한 … 수익성 악화 불가피
  • ▲ 제약 이미지. ⓒ연합뉴스
    ▲ 제약 이미지. ⓒ연합뉴스
    "합성의약품 상당수 원료는 석유화학산업과 직접 연결돼 원유 수급 불안은 제약 원료 생산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은 앞서 확보한 원료로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진 않지만,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원료 수급 불안과 원자재가격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제약·바이오업계 전반에 원가 부담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최근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 충돌 장기화 우려 속에 유가와 환율, 물류비가 동시에 오르면서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하는 양상이다.

    31일 Trading Economics에 따르면 전날 기준 나프타 가격은 t당 853달러로, 전년대비 39.9% 상승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t당 550달러 선이었으나, 2월28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 무엇보다 단기 급등을 넘어 높은 가격대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용 부담이 누적되는 흐름이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원료로, 의약품 생산 전 과정과 연결돼 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구간은 원료의약품(API) 합성공정이다. 나프타에서 파생된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각종 유기화학 중간체로 전환되며 이는 의약품 합성의 출발물질로 활용된다.

    벤젠과 톨루엔 계열의 방향족(아로마틱) 화합물, 알코올·케톤·아민류, 헥산·IPA·아세톤 등 유기용매 역시 대부분 석유화학 기반이다. 즉 의약품 자체보다 이를 구성하는 화학적 기반이 유가와 맞닿아 있는 구조다.

    정제와 결정화, 추출공정에서도 이러한 의존도는 이어진다. 불순물 제거와 분리과정에 사용되는 주요 용매(솔벤트)는 대부분 나프타 기반이다. 유가 상승시 제조원가에 직접 반영된다.

    약효 지속·흡수 조절과 관련한 제형 공정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캡슐과 정제 코팅, 서방형 제제에는 폴리머 기반 소재가 사용되며 PEG(폴리에틸렌 글리콜), PVP(폴리비닐피롤리돈) 등 주요 물질 역시 석유화학에서 파생된다.

    포장공정 역시 나프타 의존도가 높다. PVC(폴리염화비닐), PVDC(폴리염화비닐리덴),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등 플라스틱 소재와 알루미늄 복합 필름까지 대부분 석유화학 기반이다. 병과 바이알, 주사기 등도 같은 구조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에서는 일회용 설비 비중이 확대되면서 유가 영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배양 백과 튜빙, 필터 등 싱글유즈 장비 대부분이 플라스틱 소재로 구성돼 소모품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물류와 보관단계에서도 영향은 이어진다. 콜드체인 유지에 필요한 스티로폼 박스와 아이스팩, 냉동·냉장 용기 역시 석유화학제품이다.
  • ▲ 연구원이 연구소에서 의약물질을 관찰하고 있다. ⓒJW중외제약
    ▲ 연구원이 연구소에서 의약물질을 관찰하고 있다. ⓒJW중외제약
    특히 포장재는 대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크다. 의약품 포장재와 의료용 플라스틱은 인체 안전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포장재의 미세한 화학물질이 약물로 전이되는지를 철저히 검증받아야 허가를 유지할 수 있다.

    기존에 쓰던 플라스틱 포장재의 원가가 올랐다고 하더라도 제약사가 하루아침에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저렴한 다른 업체의 소재나 다른 재질로 임의 변경할 수 없다. 소재 변경을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규제당국에 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안정성 시험 결과를 다시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약사들은 나프타 가격 상승기마다 꼼짝없이 묶인 채 API 단가 인상과 부자재 가격 인상이라는 이중 부담을 구조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산업은 화학 공정 비중이 높은 산업"이라며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원료와 용매, 포장재까지 전반적인 비용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원가 부담이 빠르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이미 대응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요 제약사들은 API와 포장자재 재고를 선제적으로 확대하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일부 품목은 수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 선발주로 전환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은 재무구조로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재고자산이 빠르게 늘고 운전자본 부담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단순히 비용 증가를 넘어 재고 확보와 운전자본 부담까지 같이 커지고 있다"며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선구매가 늘고 이 과정에서 현금이 묶이면서 재무 부담이 커지는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일부 기업이 에너지 절감 조치를 시행하는 것도 비용 부담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날 오후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2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API를 구입에 의존하는 구조상 환율 상승은 곧바로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이를 제품가격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API 자급률은 2023년 기준 25.6%에 불과하다.

    한 증권사 제약·바이오 담당 연구원은 "유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원가에 반영되는 특성이 있다"며 "지금은 초기 국면이지만 원재료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2~3분기 이후 실적 부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어 "제약업은 약가 규제로 원가 상승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결국 비용 상승은 이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업계에서는 원자재가격 상승과 약가인하 정책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입장이다. 비용은 외부 변수로 오르지만 가격은 정책적으로 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가격 전가가 어려운 산업 특성까지 고려하면 유가 상승은 수익성 악화와 재무 부담 확대라는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