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기간 해협 통제 공식화 … 日 10여 척 불과이란 혁명수비대 노골적 통행료 요구에 난감해져허용시 남중국해 통제권 강화하는 中에 명분줄수도
  • ▲ 호르무즈 해협.ⓒ연합뉴스
    ▲ 호르무즈 해협.ⓒ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휴전으로 개방될 것 같았던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제도적 봉쇄로 다시 닫혔다. 이란이 선박 통과 조건으로 자국 군사 조직의 사전 승인과 통행세를 낼 것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미국과 이란이 합작 사업으로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다"라며 사실상 이를 묵인하는 발언을 했다. 국제수역의 무해통항권이 붕괴할 위기에 처하면서 한국 수출입 물류망 전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2주간의 휴전 기간에도 해협 통제를 공식화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사전 승인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다. 통과 선박은 통행료 협의 후 암호화폐 또는 중국 위안화로 통행세를 지급하는 구조다.

    운항 경로 역시 이란 게슘섬과 라라크섬 사이의 좁은 연안 통로로 강제되면서 하루 통행량은 하루 10여 척 수준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실제로 휴전 합의 당일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4척에 불과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한국 관련 선박 26척이 있다. 이 중에는 국내 정유사가 받을 원유를 실은 초대형 유조선(VLCC) 7척이 포함돼 있다. 유조선 1척당 약 200만 배럴이 실려 있어 이 선박들이 해협을 통과하려면 한 척당 30억 원 총 21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통행료 지급은 검토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지침이 내려오지 않은 상태라 개별 선사가 선제적으로 돈을 내거나 우회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기는 매우 조심스럽고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유예기간 내 외교적 타결을 기다리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해운사의 영업 손실과 더불어 막대한 추가 운임과 수급난을 동시에 떠안게 될 화주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추가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기존 장기 계약에 따라 원자재를 들여오는 화주 측과 보전을 협의하거나 해상 보험을 통해 손실을 방어할 여지가 있다"라며 "화주 특히 정유사는 원가가 오르고 원료 수급이 끊겨 공장이 멈추면서 나오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 3월 29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해역 순찰하는 중국군ⓒ뉴시스
    ▲ 3월 29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해역 순찰하는 중국군ⓒ뉴시스
    ◇남중국해·말라카해협도 통행세받나 … '통행세 도미노' 우려

    또 다른 문제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어긴 이란의 선례가 다른 주요 해협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통행세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는 곳은 글로벌 해상 물류의 핵심인 말라카 해협을 품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선례가 말라카 해협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 대응에 나섰다.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지난 7일 의회 연설에서 "국제 수로 통행은 연안국이 임의로 허가하는 특권이 아닌 유엔해양법협약에 보장된 권리"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그는 "말라카 해협의 물동량이 호르무즈보다 훨씬 많다"며 호르무즈에서 원칙을 양보하면 말라카 해협의 자유항행 역시 위협받게 된다는 점을 경고했다.

    또한 한국 수출입 물동량의 40% 이상이 통과하는 남중국해에서도 중국이 통행세를 요구할 명분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최근 유엔 안보리의 호르무즈해협 해상 수송 보호 결의안에 러시아와 함께 거부권을 행사하며 사실상 해협 통제를 묵인하고 있다. 우호국 지위로 선박 통행을 보장받으며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반사이익까지 누리는 실정이다.

    작년 중국은 미국 선박에 항만 이용료를 부과하는 등 이미 해역 내 비용의 무기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란의 선례로 중국이 영유권을 무기로 남중국해 통행세를 요구할 명분이 축적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앞선 관계자는 "만약 남중국해 등에 통행세가 부과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해운사 입장에서는 글로벌 해운 동맹을 활용해 우회로를 찾거나 중국으로 향하는 물동량 자체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대체 항로 이용에 따른 운임 폭등은 수출 주도형인 한국 경제의 물류비 급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넘어 글로벌 해상 물류의 규칙이 바뀌는 변곡점에서 정부의 소극적인 관망을 넘어선 실효성 있는 외교적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