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수 공급 우선 주문에 수익성 높은 수출 물량 축소'수출 1위' 한국 공급 축소로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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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정유사들이 항공유 수출을 줄이고 내수 공급을 늘리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항공유 수급 불안 우려가 커지자, 수익성이 높은 수출 대신 국내 물량 확보에 무게를 둔 것이다.

    2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이달 들어 항공유 수출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수급 차질로 전체 항공유 생산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내수 공급을 우선순위에 두고, 각 기업들마다 수출 물량을 줄이거나 4월 일부 수출 물량을 6~8월로 순연하는 방식 등으로 대응에 나섰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 수급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성은 있지만 내수 물량은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유사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국제 항공유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수출을 줄이면 단기적으로는 내수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수익성 악화라는 부담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통상 항공유 수출 가격은 싱가포르 제품 시장가격(MOPS)에 연동되지만 국내 공급가는 이보다 낮게 책정된다.

    정유사 관계자는 “항공유는 국내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되는 만큼, 정유사들은 수출을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라며 “따라서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이익 감소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 같이 손해를 감수하는 이유는 정부가 정유사들에 수출 제한 지침을 내리지 않았지만 내수 우선공급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항공유 가격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 항공유(MOPS) 가격은 올해 초 80달러 안팎에서 형성됐으나, 중동 리스크 확대 이후 상승해 한때 200달러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에는 120~180달러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수출 물량 조절 직전인 지난 3월 한국의 항공유 수출 단가는 크게 올랐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물량은 전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단가가 크게 뛰었다. 지난해 3월 한국은 항공유 321만t을 22억2187만 달러에 수출했으나, 올해 3월에는 354만t을 41억4628만 달러에 수출했다. 톤당 단가는 약 691달러에서 1168달러로 69% 상승했다.

    한국이 항공유 수출을 줄일 경우 한국 항공유의 의존도가 높은 미국 서부해안 지역과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항공유 수출 대상 국가 1위는 미국으로 3649만 배럴이 수출됐다. 2위는 호주(1406만 배럴), 3위는 싱가포르(933만 배럴), 4위는 일본(832만 배럴), 5위는 뉴질랜드(567만 배럴)였다.

    실제 S&P 글로벌 커머디티 인사이트(S&P Global Commodity Insights)에 따르면 한국발 수출 감소 여파로 미국 서부 해안 항공유 수입량은 4월 10일까지 한 주 기준 하루 평균 5만9000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 대비 4만5000배럴 줄어든 수치로, 2025년 기준 하루 평균 약 9만3000배럴과 비교하면 사실상 절반 수준이다. 캘리포니아·워싱턴·하와이를 포함한 미국 서부 해안 지역은 항공유 수입의 85%를 한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상황도 비슷하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유럽의 재고가 6주분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22일(현지시간) 항공유 부족 가능성에 대한 공동 대처에 나선다. EU는 회원국 정부, 에너지 공급업체, 공항, 항공사들과 협력해 대체 항공유 확보를 조율하고, 이를 EU 전역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