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논문 분석BEV 보조금 1조5630억원, HEV에 쓰면 탄소 감축 46.8% 증가내연기관차 감소 효과 HEV 9만2200대·BEV 2만8200대전력 탄소집약도 45% 낮아져야 BEV 지원 효과 역전
  • ▲ 서울 용산구 전기차 브랜드 BYD 매장을 찾은 고객이 전기차 구매보조금 지원 제도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 서울 용산구 전기차 브랜드 BYD 매장을 찾은 고객이 전기차 구매보조금 지원 제도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배터리 전기차(BEV)에 집중된 구매보조금 일부를 하이브리드차(HEV)에 배분하면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내연기관차 구매 수요를 HEV로 전환할 수 있어 전체 감축량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소비자 구매보조금은 탄소감축 효율을 중심으로 배분하고, 전기차 산업 경쟁력 강화에는 제조업체 직접 지원 등 별도의 정책수단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20일 유럽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2020~2023년 국내에서 집행된 BEV 직접 구매보조금 1조5630억원을 같은 규모의 HEV 보조금으로 전환할 경우, 보조금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생애주기 온실가스는 46.8%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국내 승용차 판매와 가격, 주행거리, 차량별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결합해 BEV와 HEV 보조금의 감축 효과를 비교했다. BEV 보조금에 따른 생애주기 온실가스 감축량은 약 143만3000tCO₂e로 추정됐다. 같은 예산을 HEV에 지원하면 감축량은 약 210만4000tCO₂e로, BEV 지원 때보다 67만1000tCO₂e 많았다.

    HEV 보조금은 HEV 판매를 약 17만7700대 늘리고 내연기관차 판매를 13만2600대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BEV 보조금은 BEV 판매를 7만7700대 늘렸지만 내연기관차 감소분은 4만4200대에 그쳤다. 연구진이 집계한 2020~2023년 BEV 구매보조금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한 대당 평균 864만6000원이었다. 같은 규모의 예산을 보조금 지급 이후 예상되는 HEV 판매량에 적용하면 대당 보조금은 194만3000원으로 추정됐다.

    연구를 진행한 김인경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인 탄소감축 효과만 놓고 보면 전기차에 보조금을 전부 투입하기보다 일부를 하이브리드차에 배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며 “현재 소비자들은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차를 내연기관차의 가까운 대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적은 지원으로도 전환 수요를 더 크게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차 구매자들이 BEV보다 HEV를 가까운 대체재로 인식하는 만큼 적은 보조금으로도 실제 구매 전환을 유도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반면 BEV 보조금은 내연기관차에서 BEV로 이동하는 수요보다 BEV 차종 간 대체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는 보조금을 반영한 뒤에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충전 불편과 주행거리 제약, 배터리 화재 우려 등이 남아 있다. 이에 내연기관차 구매를 고려하던 소비자보다 이미 BEV 구매 의향이 있던 소비자의 차종 선택에 보조금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 ▲ 서울 용산구 전기차 브랜드 BYD 매장을 찾은 고객이 전기차 구매보조금 지원 제도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현재의 배터리 생산기술과 발전원 구성을 고려하면 BEV가 기대만큼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상당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데다 차량 충전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할 때도 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전기차 보급만으로 기대한 만큼의 감축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전력 1kWh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2022년 기준 453gCO₂e에서 포르투갈 수준인 251gCO₂e로 약 45% 줄어야 같은 예산을 투입한 BEV와 HEV 보조금의 감축 효과가 비슷해질 것으로 추정했다. 전력 생산의 탄소집약도가 이보다 더 낮아지면 BEV 보조금의 감축 효과가 HEV 지원을 앞서게 된다.

    김 교수는 “태양광과 원전 비중이 높아지고 배터리 생산기술이 발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환경적으로도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의 직접 구매보조금은 BEV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전기차 구매보조금으로 총 1조5953억7000만원을 편성했다. 이 가운데 전기승용차 예산은 7800억원이다. 전기승용차 중·대형 모델의 국비 보조금 단가는 300만원으로 유지했고, 기존 내연기관차를 처분한 뒤 전기차를 구매하면 최대 100만원의 전환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그러나 HEV는 전환지원금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현행 보조금 정책에 대해 김 교수는 “전기차 보조금에는 탄소감축뿐 아니라 국내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기 때문에 환경 효과만으로 정책 전체를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소비자 구매보조금 외에도 제조업체 직접 지원 등 다양한 수단을 조합해 환경과 산업을 함께 고려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