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사각지대·민간 거점병원 고사 위기·예타 덫·공보의 붕괴 실태장지희 소장 "순천 읍면 면적 서울 1.3배인데 의료기관 40개 뿐공급자 수가 인상 위주 개혁 한계 … "현장 체감할 인력 규제 개선"
  • ▲ ⓒAI 생성이미지
    ▲ ⓒAI 생성이미지
    정부가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목표로 건강보험 수가 개편과 연간 수조 원 단위의 재정 투입 등 의료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 현장 최전선에서는 구조적 한계와 정책적 사각지대로 인한 경고음이 울린다. 수가를 인상하고 예산을 일부 지원하는 공급자 중심의 생색내기 방식만으로는 지방 거점병원의 고사, 공공병원 건립 차질, 필수 인력의 현장 기피 현상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정부의 개혁이 실제 현장 여건을 반영하지 못한 채 표면적인 수치와 수가 인상에만 매몰될 경우 지역 필수 의료망의 연쇄 붕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지역·필수·공공의료 간담회'에서는 현행 의료개혁 정책의 허점과 현장의 괴리가 드러났다. 특히 의료 취약지의 비명이 잇따랐다. 

    장지희 순천시 쌍지보건진료소장은 "순천시 읍·면 지역 면적은 서울특별시 면적의 1.3배에 달하지만 의료기관은 40개에 불과하다"며 "주민들은 진료소장이 직접 찾아와 주기를, 방문했을 때 진료소가 항상 열려 있기를 바라지만 1인 근무지에 대체 인력이 없어 불가능하다. 내가 손오공이 아니지 않느냐"고 현장의 절박함을 토로했다.

    이어 장 소장은 "공중보건의 부족으로 보건진료소장이 인근 보건지소까지 책임지다 보니 주민들은 아파야 하는 날이 정해져 있을 정도"라며 "AI 활용 진료 등 정부의 정책 발표 대상에서도 보건진료소는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남 동부권의 핵심 거점인 순천 성가롤로병원에 대해서도 "전남대병원과 비슷한 수준의 환자를 보는데 의료진은 전남대병원(40명)의 30% 수준인 12명에 불과해 겨우 버티고 있다"며 "성가롤로병원 같은 중진료권 병원이 무너지면 주민들은 2시간 거리의 전남대병원까지 이동해야 한다"고 중진료권 민간 거점병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지방 공공병원 확충을 막아서는 제도적 걸림돌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을지대의대 나백주 교수는 "공공병원 설립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기업 회계 기준을 준용해 인건비와 건축비를 줄여야 높은 평가를 받는 구조"라며 "지역 어르신 비율이 높은 지방은 기대 여명 환산 방식에서도 불리해 예타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기획재정부의 평가 방식 개편 발표에도 불구하고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부 주도의 전문 평가나 예타 면제 등 과감한 결단이 없이는 공공병원 확충이 난망하다는 의미다.

    지방의료의 최후 보루인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제도 또한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 박재일 회장은 "과거 800명대이던 공보의 수가 90명대까지 급감했다"며 "일반 사병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된 반면 공보의는 38개월에 달해 의대생들의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60년간 방치된 복무 여건과 커리어 연속성 부재로 인해 보건소와 보건지소, 병원선 등 오지 의료망 전체가 마비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의료진들은 단순히 '수가'를 올리는 방식의 개혁으로는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세종충남대병원 이병국 센터장은 "국립대병원 정원 규제에 묶여 전담 간호사조차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못한다"며 모순을 지적했다. 

    또 "최선 진료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무조건 시작되는 의료분쟁 조정과 형사 처벌 부담 등 사법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젊은 의사들의 필수 과 기피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장 규제 철폐와 실질적인 재정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법으로 정해진 건강보험 재정 국고 지원 비율(20%)을 정부가 지키지 않고 14%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현장의 지적을 인정하고 "정부가 법률로 의무 지어진 것임에도 이행하지 않은 부분은 수정해 보겠다"고 밝혔다. 

    의료계 고위 관계자는 "현장의 실상을 반영한 규제 혁파와 제도적 보완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의료개혁은 '갈 길이 여전히 먼'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