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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왜 KBS 9시 뉴스를 보는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KBS 9시 뉴스를 보면 정권의 의도가 보인다”는 촌철살인의 어록을 남겨두고 있다. 1980년대 방송의 ‘땡전(全) 편파 방송 시비’는 야당이 기자실 입구에 “방송기자 출입 금지”라고 써붙일 정도로 극심했다. 한 기자가 김대중에게 “방송 뉴스를 보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답변은 의외였다. “저는 매일 저녁 KBS 9시 뉴스만은 빠지지 않고 봅니다.”
어, 왜 그런가요.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는 야당이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요. 그런데 9시 뉴스를 다루는 것을 보면 이 뉴스가 정권에 얼마만큼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게 돼요. 정권의 의도가 보입니다.” 김대중은 TV 뉴스의 편집 순서, 리포트 시간 배당, 관련 리포트 숫자, 보도 문맥의 흐름과 기자의 언어 선택 등을 따지며 ‘정권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20일 저녁 KBS ‘뉴스 9’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표 유세 도중 피습’‘ 범인 누구?’라는 제목으로 단 2꼭지, 3분간 보도했다. 저녁 7시20분 헌정사상 초유의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한 테러 사건이 발생한지 무려 1시간 40분이 경과한 뒤였다. 시청자들에게 속보는커녕 사건 얼개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KBS는 일본의 NHK나 영국의 BBC와 마찬가지로 ‘첨단 방송 기술의 총아’이며 국내 최대의 취재진을 갖고 있다. KBS의 취재 및 제작 능력으로 시간이 다급해 고작 2건의 보도밖에 할 수 없는지는 누구보다 KBS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3일 뉴라이트전국연합이 개최한 ‘공영방송 KBS 쟁취를 위한 국민 대토론’. “방송은 찬양대나 응원단이 아니다.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안해도 좋을 일만 골라서 한다”(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 “KBS가 특정 정치 세력의 시대정신과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윤영철 연세대 교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대국민 메시지에서 “KBS에 더 이상 최소한의 양식과 개혁의지를 기대하는 것은 속절없는 짝사랑”이라며 “KBS를 권력의 덫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피습 사건이 확인해 준 또 하나의 사실은 DJ가 20여년전 “KBS 9시 뉴스를 보면 정권의 의도가 보인다”고 언급한대로 KBS가 ‘권력 읽기 습벽’을 못버리고 있다는 점. 사건을 보면 ‘권력의 마음’을 먼저 연상하는 ‘자동센서’의 완벽한 작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