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황순현 인터넷기획팀장이 쓴 <'포털=악덕재벌'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포털이 ‘언론이냐 아니냐’의 논쟁에 이어, 최근에는 포털이 재벌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포털이 재벌화됐으며, 피해자와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관리는 “1위 포털 매출액이 통신 대기업의 20분의 1 수준이어서, 재벌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물론 외형 측면에서 포털을 재벌로 분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지만 최근 포털의 행태에는 과거 일부 악덕 재벌들의 구태(舊態)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먼저 대형 포털과 중소 인터넷 기업과의 관계가 그렇다. 과거 재벌은 하도급 기업에 죽지 않을 정도의 돈을 지급했는데, 지금 포털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불법복제를 통해 확보한 콘텐츠로 돈을 벌고 있다. 어쩌다 돈을 지급해도, ‘포털에 손님이 많다’는 점을 악용해 콘텐츠 생산 원가에 턱없이 모자란 푼돈을 안겨주기 일쑤다.

    사례를 살펴보자. 디카 정보 웹사이트 업체에서 디카 분석(Review) 기사를 쓰는 J씨는 편집 디자이너와 함께 1주일 동안의 노력 끝에 ‘캐논 400D’라는 신제품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자사 웹 사이트에 실었다. 이 기사가 웹 사이트에 올라가자마자, 네티즌들이 네이버·다음 등 포털 블로그(Blog)와 카페에 이 기사를 퍼담아 나르기 시작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하루 13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네이버 검색 창에 ‘리뷰 400D’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J씨의 원래 글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블로거나 게시판 운영자들이 퍼 나른 복제 글만이 돋보이게 나온다. 한 술 더 떠 네이버는 검색 웹 페이지 위에 사진 판매업체의 키워드 광고를 게재, 돈을 벌고 있다.

    올 3월 IT 전문 사이트 K사는 실수로 서버에 담겨 있는 정보 콘텐츠를 날렸다. K사는 처음엔 혼비백산했으나 이내 콘텐츠를 모두 살릴 수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 시스템을 복구한 것이 아니라 황당하게도 포털에 K사의 콘텐츠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포털에 불법복제된 콘텐츠를 다시 담아오니, A4 용지 1만장이나 됐다”며 “포털에 고맙다고 해야 할지, 불법복제를 항의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돈 혹은 트래픽(페이지뷰)이 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중소기업이 개척한 업종에 뛰어드는 것도 문어발 재벌을 연상시킨다. 뉴스·금융·블로그·동영상 등 지금 포털이 수위를 달리고 있는 모든 인터넷 서비스 분야에는, 포털보다 먼저 사업을 시작했던 중소 인터넷 기업들의 한숨이 배어 있다. 한 인터넷 업체 최고경영자(CEO)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업은 포털 3,4개만 살고, 나머지 모든 기업들은 고사하는 이상한 시장”이라고 토로했다.

    물론 포털들이 100% 잘못하는 것은 아니다. 포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쉽고 편리하게 원하는 정보를 찾고 있고, 이는 전체 사회의 효율성 증대로 연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포털들은 원래 의미인 콘텐츠 ‘관문’ 역할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자기만의 성(城)을 쌓는데 열심이다. 중소 콘텐츠 업체와의 상생(相生)을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싼 값에 후려쳐서 포털 서버에 콘텐츠를 쌓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상위 포털이 ‘오늘의 포털’을 있게 한 네티즌(블로거 등)과 중소 업체와의 이익분배 모델을 만들지 않는 한, 악덕 신흥 재벌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