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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한석동 논설위원실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해 11월 KBS 정연주 사장 연임이 확정된 직후의 명(名)코미디 한 편. 정 사장의 첫 출근은 '개그콘서트'도 필적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노조측이 KBS 본관 정문 입구를 막고 있던 시간에 정 사장은 승용차 편으로 지하주차장 출구를 역주행해 들어가 출근했다. 뒷구멍으로나 출근해야 하는 사장에게 끝까지 대항하겠다던 노조측이 금방 잠잠해진 것도 웃기는 일이다.
어제 KBS 이사회가 TV 월(月)수신료 2500원을 4000원(연 4만8000원)으로 60% 인상하려는 안을 논의했다. 일단 의결이 보류된 인상안은 방송위원회로 넘겨지고 이어 국회 통과 수순을 밟게 된다. 잘 풀리면 연간 3000억원 수입이 늘어나는 모양이다. KBS 측은 올 가을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시큰둥한 국민여론과 대다수 야당 의원의 거센 반대 등으로 미뤄 짐작컨대 첩첩산중이다.
얼마 전 KBS측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전국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수신료 인상 '불필요' 42.8%, '찬성' 57.2%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찬성을 유도하는 문항으로 조작한 여론"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KBS 조사결과는 다수 국민의 정서로부터 좀 멀어보인다. 이를테면 인터넷 국민일보 '쿠키뉴스' 온라인 폴(poll)에 지난 14일부터 1주일간 접속한 805명 중 수신료 인상이 '적절하다'고 본 사람은 4.7%에 불과했다. '지금도 비싸다' '수신료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무려 22.9%, 72.4%였다.
KBS 조사결과를 봐도 찬성율이 썩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먼저 이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 즉 보도의 공정성·독립성에 대한 회의(懷疑)가 반영된 결과라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근래 KBS 편향 보도의 대표작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방송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일부 여당 정치인이 탄핵안 가결 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격정적으로 울분을 토하던 모습 등을 KBS는 거의 무제한 반복 방영했다.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한국언론학회 보고서가 나온 것이 그즈음이고, 그 뒤의 총선 결과가 어땠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군더더기다.
그 이후에도 KBS가 달라졌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토픽을 교묘하게 이슈화하고, 특히 편향된 이념으로 분칠한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데 앞장섰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1년 예산이 1조4000억원(2007년)에 달하는 KBS는 게다가 5000명도 더되는 대규모 임직원, 6000만원 넘는 평균연봉, '신(神)이 내린 직장' 등으로 요약되는 방만한 경영이 늘 도마에 올랐다.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최근 열린 공청회에서 KBS측은 공영성 강화, 난시청 해소, 디지털 전환, 경영혁신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수신료가 27년째 묶여 실질가치가 떨어진데다 광고 의존도가 커진 운영상의 문제 등을 개선해야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을 타박할 일은 아니다. 신뢰받는 공영방송이라면 오히려 수신료 인상계획을 옹호하고 뒷받침해주는 것이 상식이다.
수신료 인상의 결정적 장애물은 '낙하산'이다. KBS 사장 자리는 사실상 대통령이 낙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탁된 인물이 어떤 역할을 할 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02년 대선 때 신문사 간부였던 정연주씨는 이회창씨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을 소재로 부도덕성을 맹타한 칼럼 한 편을 써 그 보답으로 KBS 사장이 됐고 퇴진 압력을 뿌리치고 연임에까지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에 있던 그의 두 아들이 미국시민이 되기로 미래를 선택해 병역의무가 자동 면제된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 칼럼을 쓰고나서 몇 달 뒤의 일이었다.
모름지기 KBS 사장 자리는 KBS 사람들의 것이 돼야 할 때가 한참 지났다. 거기에도 인재들이 즐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