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문갑식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저는 대통령 덕에 오보(誤報)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0년 8월 해양수산부장관이 되기 전날 기억나십니까? 서울 명륜동 빌라로 찾아간 제게 대통령은 “보건복지부장관이 됐다고 써도 좋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내준 오징어 안주에 양주 한잔 마시던 저와 몇몇 기자는 득달같이 회사에 보고했죠.

    다음날 개각 발표로 전날 밤 쓴 기사는 오보가 됐습니다. 입장을 바꿔 제가 정치인이었고 대통령이 노무현 기자였다면 저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문갑식 의원은 국회에 딱 죽치고 앉아” “자기가 어느 부(部) 장관이 되는지도 모른다”는 기사로 매일 공격하셨을 것 같습니다.

    옛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제가 얼마 전 읽은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책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요. 카파(Capa)는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등에 종군했고 끝내 전쟁터(1954년 베트남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전설적인 사진기자 이름입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미 제6보병사단 B중대와 함께했던 그는 독일군의 소총을 맞고 해안에 쓰러지는 장병들의 최후를 기록한 유일한 기자였습니다. 필름을 잘못 현상해 그가 찍은 106장의 필름 가운데 8장만 남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라이프지(誌)를 장식한, 그 유명한 초점 흔들린 사진입니다.

    그 책을 다 읽을 즈음인 9월 27일 미안먀에서 카파를 연상시키는 기자가 길에서 죽었습니다. 일본 영상뉴스 공급사 APF 소속 나가이 겐지(長井健司)입니다. 그는 배에 총을 맞은 상황에서도 총질하는 군인을 피해 달아나던 시위 군중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던 중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기자 중에는 왜 나가이 같은 사람이 없느냐” “한국 기자는 신정아 얼굴만 찍느냐”는 네티즌들의 질타가 저를 뒤흔들었습니다. “외국 기자들은 현장을 달리는데 우리 기자들은 기자실을 달린다”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100% 옳은 비판은 아니지만 그때 우리 언론은 현장 대신 기사송고실에서 나가느냐 안 가느냐에 매달린 것처럼 비쳤습니다. 신정아씨의 뒤에 있을지 모를 권력 대신 그가 입었던 옷이 얼마짜리냐를 추적하는 데 더 열 올렸던 보도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기사송고실에서 쫓겨나 관공서 복도를 헤매는 한국 언론을 보며 저는 대통령을 고수(高手)로 인정합니다. 대통령이 지휘하고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주연에 국정홍보처 직원이 총출동한 ‘기사송고실 습격사건’에서 한국 언론은 밀리고 짓이겨졌습니다.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게 취재 봉쇄 맞으시죠? 기자들이 기사송고실 대신 대통령이 가한 언론 통제라는 본질을 부각시켰다면 지금 대통령 뜻대로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통령은 브리핑룸, 기사송고실 같은 단어를 국민들이 얼마나 좋지 않게 보는지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이 10년 전 20년 전 ‘노무현’이 아니듯 기사송고실도 예전 그 모습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언론 동업자 가운데 언론 자유를 말하면서도 경쟁자가 근거 없이 고초를 겪을 때 중계 방송하면서 그 고통을 즐기는 동업자가 있는지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언론 가운데 이탈자가 나와 언론계 전열이 흐트러질 것이라는 점도 계산에 넣고 계셨겠죠.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된 언론을 보니 속이 시원하시겠습니다. 카파나 나가이 같은 한국 기자를 보고 싶으십니까? 언론 통제가 없어져 취재가 자유롭게 되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누비는 기자가 나올 겁니다. 대통령이 언론과 기자를 얼마나 아신다고 이렇게 언론을 대하는 겁니까. 각하, 존경받고 싶으면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