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임금체불액 1조7845억 … 올해는 2조원 넘길 전망임금체불 피해 노동자 27만5000여명 … 전년 比 15.5% 증가엔데믹 이후 급증하는 임금체불액 … 체불 근로자, 발만 '동동'
  • ▲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10일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10일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못 받은 임금만 1000만원이 넘는데 가족에게 이 사정을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합니다.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어 이번 추석은 고향에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 직장에서 1000만원이 넘는 임금체불을 당하고, 현재 퇴사해 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상태인 A씨(30대·남)는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경기도 소재 물류회사에서 일했던 A씨에 따르면, 재직 당시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사업주 말에 기존 임금의 절반을 받아오다 종국에는 몇 달치 임금이 나오지 않았다.

    A씨는 "자금 사정이 나아지면 밀린 임금을 정산해 주겠다고 해서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며 "하지만 대표는 그 와중에 타고 다니던 차를 외제차로 바꿨다. 그러나 약속했던 임금은 끝까지 주지 않았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A씨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했지만, (전 직장이) 워낙 영세한 곳이라 임금을 다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받아야 할 돈이 1000만원이 넘는데,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기 부끄러워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할 추석 명절이지만, A씨처럼 몇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에게 추석은 유난히 힘든 시기다.

    올해 임금체불 사례가 지난해보다 빠르게 누적되면서 연말에는 체불 규모가 2조원을 넘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액이 1조784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운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체불액이 1조43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체불액의 60%를 넘어선 셈이다.

    지난해 임금체불로 고통받은 노동자는 27만5000여명에 달했다. 전년도 23만8000여명에 비해 15.5% 늘어난 것이다.

    임금체불액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소폭 감소했으나 엔데믹 이후 급증하고 있다. 연도별 임금체불액은 △2019년 1조7217억원 △2020년 1조5830억원 △2021년 1조3504억원 △2022년1조3472억원 △2023년 1조7845억원이다.

    고용부 노사누리 '2023 업종별 임금체불액'을 보면 제조업(5436억원), 건설업(4363억원), 도소매(2269억원) 등의 업종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고, 건설경기의 악화와 고물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체불도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 임금체불 사업주, 대부분 벌금형에 그쳐 … "징역형 등 조치해야"

    임금체불이 좀처럼 줄지 않는 이유로는 일부 악덕업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라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건설 일용근로자 35명의 임금 3700만원을 체불해 지난 11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경기도 소재 인테리어 건설업자 B씨와 같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 B씨를 상대로 접수된 임금체불 신고사건은 343건에 달한다. 그러나 B씨는 불과 17번의 벌금형만 선고받았다.

    서울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C씨는 SNS에 호화생활을 공개하는 등 정상 생활을 하면서도 근로자들에게 임금 13억을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부는 신고사건을 통해 확인된 체불 외에도 약 6000만원의 임금체불 등 5건의 법 위반을 적발하고 즉시 범죄인지, 과태료를 병합해 부과했다.

    광주의 한 기업은 정상적으로 용역대금을 지급받고도 의도적으로 퇴직금 등을 주지 않다가 사건이 제기되면 지급하는 형태를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을 체불해도 대부분의 사업주가 벌금형 처벌에 그치다 보니 오히려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처벌을 받겠다는 사업주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체불임금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악덕 사업주에 대해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 대부분이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악덕 사업주의 신상 공개와 신용 제재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임금체불은 단순한 채무 불이행이 아니라 근로계약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이는 그 노동자가 부양하는 한 가장을 파괴시킬 수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임금체불이 근로자의 삶을 망가뜨리는 중차대한 민생범죄라고 보고 체불 청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올해 약 9600억원의 체불임금을 청산한 것은 전국 기관장과 근로감독관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라며 "아직 약 2600억원의 임금베출액이 남은 만큼 임금체불 예방과 체불임금 청산, 악질 체불 사업주 처벌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고용부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노동의 대가를 정해진 날짜에 제대로 받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