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 '기자의 눈'에 이 신문 서정보 문화부 기자가 쓴 '정연주 사장의 낯뜨거운 자리보전용 신년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KBS 정연주 사장이 2일 신년사에서 ‘오만한 권력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내부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정권 교체 시기에 왜 이런 발언을 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 사장이 2003년 4월 취임한 이래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권력에 대한 비판’을 직접 언급한 게 생뚱맞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여러 차례 신년사를 했지만 비판이라는 단어는 ‘비판 기능’ ‘미국에 대한 비판’ 등 두어 번 썼을 뿐이다.

    KBS 내부에선 정 사장의 말을 2009년 11월 끝나는 임기를 지키겠다는 강변으로 보고 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대선 이후 정 사장 사퇴설이 나오자 불편한 심기에서 나온 것 같다”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오만하게 간섭하지 말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 사장 측근들도 임기 전에 사장을 교체하면 KBS의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 PD는 “임기를 보장해 달라는 주장은 정치적 독립성을 지닌 사장만 할 수 있다”며 “노무현=정연주로 통하는 정 사장처럼 정권에 의해 낙하산으로 내려온 이가 차기 정권에 임기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사장에게 KBS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매진했는지를 물어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취임 직후 논란을 빚은 이른바 ‘개혁프로그램’을 비롯해 탄핵 방송 때 편파 시비로 공정성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6년 연임 때는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기 위해 이사회와 노조가 합의한 ‘사장추천위원회’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최근 정 사장을 보는 내부 시선은 더 싸늘하다. 취임 첫해 외에 4년간 경영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노조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86%가 정 사장 등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사장은 또 아들의 미국 국적 취득 및 병역 면제와 관련해 지난해 국회에서 “미국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며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으나, 한 아들은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다른 아들도 국내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위증 논란이 일었다.

    KBS 내부의 냉소는 이런 정 사장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또 다른 PD는 “정 사장이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으로 갑작스럽게 권력 비판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오만한 권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