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포럼'에 박성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최근에 발표된 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에서 혁신도시 건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경제성 효과를 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책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중립적 전문가에게 의뢰한 연구 결과 수도권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효과가 1조3000억원, 그리고 수도권의 감소분을 제외한 순증가 효과가 3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자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지난 정부에서 지방분권화를 책임지고 추진했던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국토연구원에서 파견 나온 직원에게 지시, 4조원대의 이전 효과를 만들도록 하여 국토연구원의 연구 결과로 공표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전 대상 190여개 공공기관의 임직원 가족이 대부분 이주하고, 관련 업종들이 모두 동반 이주한다는 가정은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이전 대상인 모 공기업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을 동반하여 이주할 의향을 가진 직원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내세웠던 노 정부에서 이뤄졌던 일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지만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됐고 현재도 진행중이라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지난 정부 지방분권화의 핵심사업이라 할 수 있는 혁신도시가 건설된다 할지라도 공동화할 것을 우려한 정부가 170여개 공공기관을 무리하게 이전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무리수를 둔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혁신도시는 공공기관들이 계획대로 이전하더라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건설되고 있는 혁신도시의 조성 원가가 인근 산업단지의 분양가보다 2~6배 높아 민간 기업 유치의 커다란 장애 요인이고, 높은 토지보상비로 인한 고분양가로 주택 미분양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전 대상 공공기관 중 43개 기관이 청사 신축에 2조9000억원의 국고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대대적인 공공기관 민영화 작업을 추진할 계획으로 있는데, 이전 대상 상당수의 공공기관이 민영화 대상 기관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혁신도시 건설의 타당성을 떨어뜨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경제적 효율성이 없이 지방으로 이전하기로 예정돼 있는 공기업들이 민영화된다면 시장논리에 따라 지방 이전을 백지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방 이전을 조건으로 민영화할 수도 있겠지만 민영화의 당초 취지와는 크게 어긋나고 제값도 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혁신도시 건설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혁신도시의 토지보상 협의율이 금액 기준으로 78.1%, 2조4266억원의 돈이 풀린 상황에서 상당 부분의 수정을 의미하는 전면적인 재검토는 해당 지역 주민 및 지방자치단체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혁신도시 구상은 원점에서 다시 한번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혁신도시 건설로 당초 의도했던 지방경제 활성화 및 재정 자립도 제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 명확할 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경쟁력도 떨어뜨리는 혁신도시 건설을 현행대로 지속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계륵(鷄肋)이 된 혁신도시지만 이명박 정부는 혁신도시 대상 지역을 포함한 지방의 경쟁 역량을 제고시켜 지방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미래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여 경제성이 없는 혁신도시 사업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를 설득해 나가야 한다.

    세계화와 더불어 선진국들은 이미 국토정책의 기조를 ‘국내의 지역간 비교’에서 ‘지역의 국제간 비교’로 전환했다. 우리나라의 5대 광역권은 이미 인구나 역량 측면에서 주요 선진국이나 도시권과 경쟁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도 혁신도시 정책의 재검토를 계기로 국내 지역 간의 제로섬 경쟁보다는 우리나라의 각 지역이 세계시장 선점을 위해 외국의 지역과 경쟁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