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대중(大衆)의 믿음과 다른 기사를 쓰려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광우병 파동의 저변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가 있다고 말한다. 돈은 많지만 일은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을 앉혀놓았으니 사람들이 화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또 광우병 파동이 일어난 것은 이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하룻밤 자려고 미국에 한꺼번에 양보한 때문이라고 한다.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게 돼 있다.

    어떤 이들은 우리 역사가 특수하다고도 한다. 오랜 기간 주변 강대국의 억압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강대국이 우리를 차별한다거나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국민이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주한 외교관 한 사람은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됐는데 왜 그런 피해의식을 아직도 갖고 있느냐"고 의아해 했다. 우리 역사를 모르는 얘기다. 이번에도 '검역 주권 포기'라는 명명(命名)이 국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의 조항은 우리 말고 다른 나라와 미국의 협정에도 있지만 어디에서도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는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많은 우리 국민은 분노를 느꼈다. 이 정권이 이런 국민 정서를 무시했다가 혼이 나고 있다.

    다 옳은 얘기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 파동은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사 실패, 졸속 협상, 국민 정서도 모두 파동의 원인이 됐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은 어디까지나 광우병이다. 갤럽 조사에서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는 응답이 33.2%, "가능성이 약간 있다"는 응답이 33.3%였다. 국민의 3분의 2가 미국 쇠고기는 광우병 쇠고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광우병 파동인 것이다.

    많은 국민이 믿는 대로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려서 죽을 수 있다면 고민할 것도 없다. 당장 한미 쇠고기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 재협상도 안 된다. 아무리 매년 100억 달러 가까이 되는 대미(對美) 무역흑자가 중요해도 사람이 죽는 문제를 두고 수출 걱정을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광우병 소로 확인된 것은 세 마리다. 모두 1997년 육골분 사료가 금지되기 전에 태어난 소였다. 육골분 사료 금지 이후 태어난 미국 소 중에선 광우병 소가 확인된 적이 없다. 지금 '30개월'이 중요한 문제가 돼 있지만 실은 120개월 된 소까지도 광우병 확인 사례가 없는 것이다. 미국이 국제기준보다 9.9배 강한 검사를 해서 나온 결과다. 그래서 세계 96개국이 미국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고 있다. 미국에서 1년에 잡는 30개월 넘은 소는 700만 마리가 넘는다. 그 대부분을 미국 사람들이 먹고 있다. 미국 사람들도 뼈 국물로 만든 수프를 거의 주식으로 먹는다.

    그런 미국 사람들 중에 미국 땅에서 미국 쇠고기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는 이런 문제를 적당히 넘어갈 기관이 아니다. 미국 언론도 쇠고기 생산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3억 명의 인구에서 한 명도 없었다면 광우병 위험성은 극히 낮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에서 식품 안전에 가장 철저한 기관 중 하나인 미국 FDA(식품의약청)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사실 전 세계에서 올해 들어 인간 광우병이 확인된 사례가 없다.

    영향력이 큰 방송과 인터넷은 이런 기본적인 사실들을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확인 안 되고 광우병 걸린 사람도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리는 것으로 돼 버렸다.

    국민 대다수가 믿고 있는 것이 실은 사실과 다를 때 기자는 어려워진다. 기자는 국민 다수를 따라가면 되는 정치인이 아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정권의 생각과 다른 기사를 쓰기는 쉽다. 그러나 국민의 믿음과 다른 기사를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편 든다" "정권 편 든다"는 턱없는 오해도 사기 십상이다. 차라리 미국 소가 광우병 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해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싫다고 해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공자 말씀이 생각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