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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개월간 미디어 법 개정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겪어온 홍역은 생각만으로도 지긋지긋해서 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전혀 내키지 않을 정도다. 최근 미디어법을 둘러싼 갈등은 북한의 위성체 발사, 장자연 리스트, 박연차 게이트, 그리고 또다시 뉴스의 전면에 부상한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묻혀 언제 그랬나 싶게 소강국면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일도 많고 탈도 많은 나라다.
하지만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은 성격도 이름도 애매하기 짝이 없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라는 한시적 휴전 공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여야가 합의한 100일이 지났을 때 이는 또다시 우리 사회의 헌정질서를 근본에서 뒤흔들 폭발적 쟁점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처럼 극한적인 국론분열의 생난리를 치는 것일까?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에 해법은 없는 것일까?
방송법, 신문법, 정보통신망법, 디지털 전환특별법, IPTV법. 저작권법 등을 아울러 통칭하는 미디어법 중에서 갈등의 핵은 방송법이며, 그 골자가 되는 쟁점은 주요 방송사업(지상파와 케이블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 소유제한 완화다. 현행법으로 완전히 금지되어 있는 주요 방송 사업에 대한 대기업 및 신문사·통신사의 소유제한을 일정수준까지 완화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쟁점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은 어찌 보면 간명하다. 미디어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자유주의와 시장자유주의의 대결 구도가 그것이다. 전자 입장에서는 엄격한 미디어 소유규제를 통한 미디어의 다양성 확보, 그리고 이를 통한 의견이나 여론의 다양성 극대화를 옹호한다. 하지만 규제가 과도할 경우 미디어 사업에 대한 자유로운 참여가 제한되어 산업적 효율성이 떨어지고 다양성이 오히려 약화될 우려가 있다. 역으로 시장자유주의 입장에서는 미디어시장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해 미디어사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 활성화가 의견 및 여론 다양성 보장이라는 성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미디어 규제정책의 본질은 이처럼 대립적인 두 입장 간의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할 것이다. 미디어의 정치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은 상호를 완성하며 지탱하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요소들이다. 이중 정치적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미디어의 현실적 존립 조건인 사업 측면을 과도하게 억누를 위험이 있고, 역으로 사업 쪽에 지나친 무게가 실리면 미디어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고려가 간과될 우려가 있다. 이 양 측면이 건강하게 균형을 이룰 때 언론이자 산업으로서의 미디어는 최적의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금번의 미디어법 개정안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균형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현재의 방송법이 담고 있는 소유제한 정책은 능력 있는 대기업이나 신문사 등의 주요방송사업 참여를 원천 금지하는 사전 소유규제로 방송의 산업적 경쟁력을 가로막으면서 동시에, 느슨한 사후규제로 방송내용이 담보해야 하는 공익적 책무를 방치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경쟁력과 공익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는 꼴이다. 과도한 사전규제는 완화하는 대신 사후규제를 실효성 있게 보완함으로써 방송 미디어의 산업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러한 법 개정이 타당하다는 것은 굳이 길게 언급할 필요도 없다. 굳이 디지털 컨버전스니 미디어 융합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업적인 차원에서 능력 있는 사업자들이나 미디어들이 새로운 미디어 영역으로 자유롭게 진출하거나, 인수, 합병, 공동사업 등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열어주되, 심각한 집중의 폐해가 예상되는 경우 규제를 가하는 것이 미디어 발전 차원에서 어떤 면으로든 자연스러운 정책방향이다. 이러한 추세를 가로 막으려는 시도는 급속히 변화하는 미디어 기술 및 시장 환경에 대해 철저히 무지하거나 내지 이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 착각에 불과하다. 만일 후자의 노선을 따를 경우 우리의 미디어 산업은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며 폐쇄적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북한의 경제처럼 머지않아 철저히 도태되고 파탄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도태된 미디어 산업이 다양성이나 공정성, 공익성을 구현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해외의 대다수 주요 국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엄격한 사전 소유규제는 완화하는 대신, 이들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사후 행위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디어규제정책을 전환시키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기업과 신문사의 주요 방송사업 참여기회를 아예 가로막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미국의 주요 일간지(월스트리트 저널, USA 투데이 등)는 방송사를 교차 소유하지 않으며 보도전문채널도 운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 최대의 전국지인 USA Today는 2009년 2월 현재 85개 일간지, 900여개의 여타 저널, 20여개의 방송사, 130여개 인터넷 웹 사이트, 잡지와 광고 텔레마케팅회사 등과 함께, 글로벌 미디어 그룹인 가넷 그룹(Gannett Chain)에 의해 소유되어 있다. 주요 선진국의 방송사들 및 신문사들 중 다수가 이처럼 글로벌 미디어기업에 의해 소유되어 있다할 것이다.
현행 방송법상의 과도한 소유규제는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980년 언론인 강제해직 및 언론통폐합의 유산이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과 언론사의 방송사업 소유, 경영은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명분은 재벌의 방송장악, 언론권력 등장을 막는 것이지만, 실제 의도는 언론을 칸막이 쳐 순치하고자 함이었다. 미디어제도 연구자인 헬린(Hallin)과 맨치니(Mancini)는 국가주도의 과도한 미디어 상업화를 야만적 탈규제(savaged deregulation)라 명명한 바 있는데 이에 빗대어 세계에 유례없는 신군부의 방송 소유규제는 역으로 “야만적 규제”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방송법 소유규제 완화는 이 같은 비합리적 과잉 규제를 정상화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방송법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주장은 논리적,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성적, 정서적, 퇴행적이다. 아무런 생산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언론노조 등에 끌려가며 법안 상정 자체를 가로 막는 야당 측의 대응은 무책임, 무소신의 극치로, 이들이 국정을 주도하게 되면 어떤 일이 빚어질까 오싹한 느낌마저 갖게 된다.
하지만 금번에 미디어법 개정을 주도하는 책임을 진 정부·여당 측에서도 문제가 없지 않다. 인수위 단계부터, 권력 인수 작업의 일환으로 미디어 영역을 자기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듯, 새로운 권력의 핵심인사들이 방송 및 미디어정책과 관련해 드러낸 오만하고 거침없는 언행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광범위한 이해당사자 및 전문가 집단을 망라해 구성하고자 했던 21세기 미디어 위원회 대신 한나라당 내에 미디어 특위를 두고 논의를 밀실화시켜 미디어법 개정의 최종 작업을 진행시킨 점도 온당치 않았다, 그 과정에서 미세조정이 필요한 테크니컬한 수준의 소유제한 완화 기준들이 법안의 내용으로 제시된 것은 상식에 기초한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 눈에도 갑작스럽고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정작 금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방송법 개정은 큰 방향에서 정당하고 또 미디어 시장 상황이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연말 국회 마비사태 이후 현재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양상이다.
이제 정부 및 여당은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방송법 개정의 실마리를 조심스레 풀어가야 할 것이다. 미디어 정책에서는 정치적 갈등구조 및 국민정서를 고려한 점진적, 타협적 접근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미디어 정책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소수가 주도하는 속전속결식의 정책 추진 방식이 명백한 오류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정부 및 여당은 논리적 우위와 무관하게, 적극적인 대화, 의견수렴, 설득을 통해 국민들과 정치권, 시민사회 영역의 우려를 해소시키는 노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디어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주원인이 반대집단과의 ‘소통 단절’ 내지는 ‘소통 부재’라고 할 수 있기에 이들과의 소통채널을 회복하는 조치가 절실하다.
소통채널 회복차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미디어 정책의 지휘계통을 이루는 청와대,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여당 핵심인사들이다. 이들은 시장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 양자를 포용하며 갈등을 봉합하는 정치적 매개자 역할을 할 것이 요망된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이런 자리들은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시장 자유주의자들 일색으로 라인업 되었고, 이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성향이 강한 미디어 경영진, 시민사회, 노조집단과 각을 세우는 갈등의 장본인들이 되고 있다. 이들을 좀 더 중도적인 인사들로 대체할 경우, 미디어 정책 채널 중 상당수가 기능을 상실한 가운데 정책의 타당성 내지 정당성과 무관하게 불필요한 정서적 반발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현 상황을 일정 부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질적 권한도 없는 구색 맞추기 식의 임시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책 행위자들이 참가하여 정책의제를 논의하는 정례화 된 사회적 논의기구를 운영하는 것도 채널 회복차원에서 검토해봄직한 대안이라 할 것이다.
[윤석민/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