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초 과잉생산으로 시멘트가 남아 돌았다. 業界의 호소를 들은 朴正熙 대통령은 내무장관에게 남은 시멘트와 철근을 인수, 농촌 마을에 나눠주도록 지시하였다. 1년 뒤 그 시멘트가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조사하고 보고하는 회의가 열렸다.
     
     어떤 마을은 全주민들이 나눠 가지고 말았다. 어떤 마을은 주민들의 宿願 사업이던 다리를 놓고 우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이런 저런 보고를 다 들은 朴 대통령은 딱 한 마디 논평을 하였다.
     
     "앞으로 잘 하는 마을만 지원하라. 못하는 마을은 自助心이 생길 때까지 지원하지 말라."
     
     이 말이 새마을 운동의 성공을 가져온 지침이 되었다. 잘하는 마을만 지원하니 못하는 마을은 더 분발하였다. 전국의 3만 이상 마을들이 경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軍政시절이던 1962년 1월 경제기획원이 朴正熙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보고하였다. 다 듣고 나서 朴 의장이 질문하였다.
     
      "그런데 기술분야에는 별로 어려운 문제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는 마당에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기술수준과 기술자만으로도 그것이 가능한지?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 대한 어떤 대책이 서 있는지요? 이 점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적 측면만 고려하였던 관료들은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한다.
     송정범 차관은 "기술수급계획은 별도로 작성하여 보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국가적 차원에서의 과학기술 개발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과학자나 경제관료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점을 지적한 朴正熙의 말 한 마디는 그가 평소에 지녔던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문제의식은 매사를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항상 의문을 갖는 태도이다. "과연 저렇게 될까?" "저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까?"라는 話頭가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권력자의 문제의식이 역사를 바꾼다. 李明博 대통령은 南北관계-法治문제에 대하여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