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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뉴 데일리 신문에 김동길 교수님이 쓰신 글, 학생들이 “대학 가면 노는 이유”를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입시 지옥에 시달리며 공부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에 염증이 나서 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동감하지만 그보다 더 실질적인 원인은 한국 대학에 낙제 제도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40년 넘게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 대학제도를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한국 대학에는 낙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 대학도 미국 대학들처럼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은 가차 없이 낙제를 시킨다면 한국 대학생들도 졸업하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이상으로 최선을 다 해 공부를 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공부 안하는 한국 대학생들이 아니라 공부 안 해도 졸업할 수 있는 한국 대학 교육풍토가 문제라 생각합니다.

    미국 대학은 비교적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물론 미국 내 100순위 안에 드는 대학들, 예를 들어 Ivy league 대학들, Big Ten, Pacific Ten 같은 대학들은 학교 성적도, SAT, ACT 같은 시험 성적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명문대가 아니라하여도 좋은 대학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 대학마다 일반적으로 신입생을 맞이하는 첫해에는 기숙사, 아파트, 하숙에 방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허술한 다락방까지 꽉 찰 정도입니다. 그러나 겨울 방학이 지나 2학기가 되면 썰렁해집니다. 신입생이 되자마자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많은 학생들이 긴장을 풀게 됩니다. 이제 부모 품에서 떠나 부모의 감시 없이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하며 나태해지기 쉬운 것입니다.

    대학에는 교수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각 과목마다 매 주 치르는 시험, Quiz가 있습니다. 일주일동안 배운 것을 월요일에 치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 달 치르는 시험이 있습니다. 또 중간고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학기말 시험이 있습니다.  점수는 매 주 시험, 매 달 시험, 그리고 중간시험, 학기말 시험마다 차지하는 비율이 있어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시험성적을 다 종합해 학기 말 성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주말이면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매 주마다 치르는 quiz 성적이 부진한 경우, 경고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시험, 또 시험을 통과해 3학년 쯤 되면 네 명이 함께 사용하던 기숙사 방을 혼자 독차지 할 정도가 됩니다. 하기 때문에 미국 회사 사원 채용에는 내가 알고 있는 한, 필기시험이라는 게 없습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토록 수많은 시험을 거쳐 가며 그 대학을 졸업했다는 자체가 자격증인 것입니다.

    회사에서 인터뷰 할 때 보는 것은 전체적인 인간됨됨이입니다. 다시 말해 팀워크를 잘 해나갈 수 있는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가. 매너가 세련되었는가, 시민의식은 건전한가, 문화 수준은? 이런 것들이지 실력을 평가한다는 게 아닙니다. 물론 낙제가 없는 대학도 있습니다. 그 예로 한국 어느 대통령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대학 같은 곳은 학비만 내면 졸업할 수 있는 대학인 것입니다. 미국에도 이런 대학들이 수두룩합니다.

    낙제를 하는 한국 유학생도 많습니다. 심지어 부모는 아이가 어느 대학에 잘 다니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그 아이는 이미 그 대학에서 낙제하여 학교 근처에 있는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도 이런 학생이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사실대로 말도 못하고 고민하는 학생. 그들 중에는 2급 대학에 다니다가 열심히 공부하여 다시 본 학교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 학교의 좋은 점입니다. 성적만 좋아지면 기회를 줍니다. 재등록이 가능합니다.) 대부분은 성적을 만회하지 못하고 학비만 내면 졸업할 수 있는 대학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미국대학에 한국 학생이 드물던 시절, 한국유학생이 낙제를 했던 실화입니다. 그 학생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졸업한 미국의 명문 공대에 들어왔습니다. 하숙방도 아버지가 있던 그 집, 그 방에 들었습니다. 그 아버지를 기억하는 하숙집 주인은 아들이 똑같은 학교에 공부 하러 왔다는 것에 너무 기뻐했습니다. “아버지도 이 작은 다락방에서 공부하여 지금은 아주 훌륭한 분이 되었으니 너도 열심히 공부하여 아버지만큼, 아니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며 각별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에게는 유혹이 너무 많았습니다. 학교에는 골프장도 있고 주변에는 놀러 다닐 곳이 즐비했습니다. 신나게 놀다보니 공부를 잘 할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2학기도 채 못하고 낙제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와 고등학교 동창인 다른 친구도 하마터면 낙제를 할 뻔 했습니다. 함께 저녁 먹으러 식당에 가자, 볼링장에 가자, 영화관에 가자 등등 그 유혹을 물리치고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놀러 다니다 보니 시험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몇 번 경고를 받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에 매달려 이 친구는 그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공대를 졸업한 이 친구는 미국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물론 필기시험 같은 건 없었습니다. Purdue 공대를 졸업했다는 것만으로 실력이 충분히 증명된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한국 학생은 참 똑똑합니다. 나는 20여년간 미국 학교에 근무하면서 미국태생 학생, 한국 학생, 그리고 여러 외국인 학생을 가르쳐봤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똑똑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미국 태생을 다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하는 한국 학생이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많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생도 주어진 환경이 다르다면, 대학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 할 것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낙제를 하고, 낙제하여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면 자신의 꿈을 이룩하기도 힘들고 좋은 직장도 구하기 힘든 현실이라면, 그야말로 입시를 준비하던 그 이상으로 기를 쓰고 공부 할 것입니다.

    왜 한국 학생은 대체적으로 협동정신에 약하고 이기주의자들인가? 왜 한국 학생은 미국 학생처럼 축구나 야구 같은 여러 운동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가? 왜 한국 학생은 자원봉사 같은 좋은 일에 나서지 않는가? 그 답은 간단합니다. 입시지옥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지도자가 대한민국 국력 운운합니다.  G20정상회의 유치가 국력을 향상 시킬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다. 자긍심을 가지자” 라고 외친다고 저절로 국력이 향상되지 않습니다. 품격 있는 사람, 자긍심이 강한 사람, 능력과 자신감 탄탄한 사람, 이런 국민이 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국력 향상은 품격 있는 사람 만들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육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 국력이란 그저 미사여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