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도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기로 결정된 후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런 주장은 애국적 심정에서 우러나온 것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선진국이라는 것은 국력의 총량을 기준으로 하여 정의되는 개념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소득과 복지의 수준, 각종 사회적 제도와 시설의 편의성, 사회적 쟁점들의 순탄한 해결 등과 같은 질적인 요소를 기준으로 정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과 복지의 수준이나 각종 사회적 제도와 시설의 편의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국민의 저력과 이제까지 이루어 온 성과에 비추어볼 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쟁점들의 순탄한 해결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실현 불가능한 사항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제기된 각종 쟁점들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대결양상을 보면 그러한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쟁점의 순탄한 해결이란 쟁점이 이성적 토론과 법률적 절차에 따라 사회적 소음 없이 해결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쟁점도 순탄하게 해결되는 일이 없다. 한·미FTA비준문제, 언론매체 관련 법, 교육정책, 노동법개정, 도시재개발사업, 4대강 개발사업, 세종시 건설계획변경 등 쟁점으로 부각된 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순탄하게 해결된 것이 없다. 쟁점의 해결과 관련된 이성적인 토론은 성립되지 않고, 법률적 절차는 무시되며, 막판에는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다. 

    이처럼 어떠한 사회적 쟁점도 순탄하게 해결할 수 없는 것, 이것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병이다. 그리고 이 병은 오늘날 지구상의 선진국 및 준선진국(準先進國)들 가운데서, 혹은 20개 경제강국들 가운데서 오로지 한국만이 앓고 있는 특이한 병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 병을 한국병(韓國病)이라 부른다. 이 한국병을 고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G20 대열에서도 낙오될 가능서마저 있다.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한국병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 핵심적 근원은 우리 사회에 깊이 침투해 있는 사상대립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혁명적 사회주의사상과 김일성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진지를 구축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사상 및 대한민국 수호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적 대치가 우리나라로 하여금 한국병을 앓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사상과 김일성주체사상을 포지한 사람들은 항상 우리 사회에서 분란을 일으킬 궁리를 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언동을 하고 있다. 사회가 평온해지면 자기들이 추구하는 혁명(혹은 변혁이라고도 말한다)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분란을 일으킬 불씨(쟁점)를 만들기도 하고, 우연히 사회에서 분란의 불씨가 형성되면 그것을 큰 불로 확대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일단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만 하면, 그 쟁점의 해결을 위한 이성적 토론이 성립될 수 없도록 만들고, 법률적 절차를 무시하며 투쟁하도록 선동한다.  

    그들은 사회가 평온해지는 것을 절대 저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상문제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쟁점이라도 그 쟁점을 사회적 분란의 불씨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쟁점을 둘러싸고 이성적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법적 절차를 무시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을 경우 그 배후를 면밀히 캐보면 반드시 그들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제외하면, 우리 사회에는 그런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가진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동구에서 사회주의체제가 와해되고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1990년대 초·중반, 한 때 규모가 축소되고 사기가 저하되었었다. 그러다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에 다시 규모를 확대하고 사기를 회복했으며,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히 강화했다. 이들은 자기들과 공생 가능한 정권에서는 사회적 소음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규모와 영향력을 확대하다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엔 모든 사회적 쟁점을 분란확대에 이용하려는 전술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한국병을 고쳐야 하고, 한국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병의 근원에 대한 효과적인 국민적 대처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