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이크 아시아가 21일 수상식을 끝으로 폐막했다. 아시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들이 모인 축제의 장이자 거물 크리에이티브들로부터 최신 광고업계의 최신 경향에 대해 듣는 배움의 장이기도 했던 본 스파이크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 제일기획의 김홍탁 인터액티브 제작국장이 디지털 부문의 심사위원을 담당했다. 그에게 스파이크 아시아의 심사 소감을 들어본다.

     

  • 애드페스트나 부산국제광고제 등 여러 국제광고제에서 심사한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스파이크 아시아에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다면?

     

    심사는 어느 광고제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심사위원들 모두가 크리에이티브 종사자들이기 때문에 선정 기준에 있어 의견이 크게 갈리는 일이 없다. 물론 어떤 작품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도 있지만 심사위원장이 조율해나가는 과정에서 무리 없이 의견이 절충된다.

    결국 작품이 얼마나 창의적이며 새로운가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담당한 디지털 부문은 앞으로 주류가 될 매체이다. 향후 매체 기술이 발전해감에 따라 콘텐츠 역시 다양한 형식으로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텔레비전과 같이 오래 된 매체는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기 힘들다. 최근 많이 언급되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과 같은 콘텐츠는 기술발전에 따라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부문과 같은 경우 향후 10년을 주도할 새로운 표현방식을 보여주는가가 심사할 때 큰 부분을 차지했다.

     

    스파이크 아시아는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도 참가하지만 사실 아시아의 광고제로 시작했다. 출품작들에게서 아시아의 고유성이 돋보였는지, 아니면 글로벌화된 모습이 두드러졌는지 궁금하다.

     

    한 마디로 거의 모든 작품들이 글로벌화되었다. 특별히 아시아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요소는 세계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물론 지역적인 특성이 돋보인 작품이 없지는 않았다. 뉴질랜드의 ‘라이브 레스큐(Live Rescue)’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온라인을 통해 조난자 구출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게 한 캠페인인데, 대중들에게 구조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해안구조대 지원 모금을 이끌어내 칸 국제광고제에 이서 이번 스파이크 아시아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군도로 이루어져 해안선이 매우 긴 나라이기 때문에 해안구조대의 역할 역시 일반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는 사실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것이 바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스파이크 아시아에 한국 출품작들의 성적이 저조했다. 쇼트리스트에 오른 작품도 얼마 되지 않는데 (제일기획의 한류 소개 캠페인이 디지털 부문 동상을 타고 금강 오길비의 하기스가 옥외 부문 쇼트리스트에 올랐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출품작 수가 너무 적었다. 스파이크 아시아가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제일 큰 원인일 수 있겠다. 한국에서는 일단 칸 국제광고제와 같이 큰 광고제부터 출품하려고 하는데, 먼저 이런 지역 광고제를 디딤돌로 출발해 국제적 광고제에 출품하는 게 옳은 순서라고 생각한다.

    출품작 수만 적은 것이 아니라 국내 제작 수 자체도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디지털 부문에서 쇼트리스트 중 약 절반을 차지했다. 게다가 금상 세 작품과 그랑프리마저 일본에게 돌아갔다. 이는 일본의 디지털 광고 저변이 매우 넓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단은 양이 많아야 그 중에서 수준 높은 작품도 나올 수 있다. 일례로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조차 디지털 인터액티브를 담당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 하지만 사실 인프라 부분에서만 따지고 볼 때 그럴 뿐이다.

     

    칸 국제광고제나 스파이크 아시아 사무국에서는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인식 하에 우리나라에 얼마 배당되지 않는 심사위원들을 주로 사이버나 디지털 부문에 배정하고 있지만 실제 수상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무엇인지?

     

    물론 능력 있는 크리에이티브들을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인터넷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저조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온라인 홍보에 대한광고주들의 인식이 아직 낮은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광고주들 역시 온라인 홍보가 중요하다는 명제는 알고 있지만 일단 디지털 홍보에 배정되는 예산이 턱없이 적다.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예산이 텔레비전 광고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집행의 의사결정자들은 디지털 홍보의 중요성을 아직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해외 광고제에 참가해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는 광고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광고주들의 인식이 며칠 국제광고제에 다녀온다고 해서 바뀌기는 어렵다. 유명연예인들을 앞세워 별 메시지 없는 텔레비전 광고만 내보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상품의 특성을 뚜렷이 내세워 브랜딩(Branding) 하려는 시도보다는 단시간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해서 일단 판매부터 하려는 생각이 앞선 것이다. 이는 광고보다는 ‘선전’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다 보니 광고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한가’가 아니라 ‘요즘 가장 뜨는 연예인이 누군가’ 하는 것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크리에이티비티’를 앞세우지만 실제 기획 전에 모델로 쓸 연예인이 지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고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놓은 아이디어들이 실무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수락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의사결정자에게 보고되었을 때 그 아이디어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물론 디지털 부분에서는 그런 ‘연예인 잡기’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 한 예로 이번 스파이크 아시아에서 제일기획이 발제한 세미나에 소개된 ‘okgo’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사실 그 캠페인은 내가 이끌고 있는데, 이 캠페인을 시작할 때도 광고주를 설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나마도 인터넷 캠페인이었으니 가능한 것이지 텔레비전 광고였다면 제안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칸 국제광고제에 이어 이번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캐논의 ‘포토체인(Photochain)’과 같은 작품을 보면 반드시 캐논 카메라로 찍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광고주들은 그런 부정적인 면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아이디어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이번 디지털 부문의 경향은 어떠한가?

     

    디지털 부문에서는 아이디어 못지 않게 새로운 기술의 활용이 중요하다. 이번에 수상하는 유니클로의 작품 역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술이라고 해서 꼭 3D나 증강현실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술이 사람의 감성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이폰 북(iPhone Book) 같은 작품 역시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술이 아이디어와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지, 기술이 사람을 압도한다면 좋은 캠페인이라고 할 수 없다.

     

    태국과 같은 나라는 경제적 규모나 인구로 보나 결코 우리나라보다 대국이 아님에도 뛰어난 크리에이티비티를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와 같이 독특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화의 차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매우 보수적이다. 또한 절대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것을 매우 꺼린다.

    이를 테면 우리나라 광고에서는 태국 광고에서처럼 평범한 사람이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다. 항상 예쁘고 잘생긴 사람, 잘 차려 입은 사람만 등장한다.

    광고는 크게 ‘열망’을 일으키는 것과 ‘공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멋진 사람이 잘 차려 입고 좋은 차를 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제품을 구입하고 싶게 만드는 한 방법이기는 하다. 평범한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임으로써 ‘공감’을 일으키는 방법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공감’의 시대이다. ‘열망’을 일으키는 방식은 이미 구식이 된 지 오래이다. 우리가 ‘소비자 인사이트(customer insight)’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하려는데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런 부정적인 면은 광고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일반 대중들은 매우 수준이 높다. 설사 네가티브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공감’의 광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영화는 이미 유명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고 있다. 영화는 광고보다 창의적인 면을 보일 여지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광고는 광고주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광고주들이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광고는 광고주만의 것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하고 돈을 내는 소비자들, 일반 대중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주보다는 소비자들의 시각을 먼저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제작하는 사람들은 늘 소비자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짜낸다. 광고주들도 광고를 실제 소비하는 사람들인 일반 대중의 것임을 알지만 실제 광고를 제작하고 집행할 때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최종 결정은 사실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 하지만 광고주들은 본인의 잣대로 광고를 본다.

    패션이나 주류 같은 브랜드는 사실 상 타기 좋은 부문이다. ‘막 가는’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류 광고를 보면 구분할 수 어려울 정도로 다 비슷하다. 현재 해외 광고를 선도하는 대형 브랜드들로 기네스나 나이키, 디젤 등을 들 수 있다. 그런 광고들은 매우 도발적이다.

    올해 칸 국제광고제 옥외 부문 그랑프리를 받은 디젤의 ‘바보가 되어라(Be stupid)’와 같은 광고를 보라. 우리나라에서 그런 광고를 집행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일부러 노이즈 메이킹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자체검열이 심하다. 위헌 소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광고 심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반적인 부문에서 홍보 부문에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는 광고제 수상 경력이 대행사나 크리에이티브의 성과의 주요 잣대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애드페스트와 같은 타 아시아 광고제에서도 심사위원을 담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본 스파이크 아시아 광고제와 애드페스트를 비교한다면?

     

    출품작들에게서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스파이크 아시아는 세미나나 워크숍에 국제적인 유명인사들,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들이 대거 참석한다. 이는 화려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칸 국제광고제 사무국에서 주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세미나들도 한 시대의 주요한 트렌드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각 부문 심사위원장들이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세미나들이 각 부문의 최신 경향에 대해 좋은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너무 심각하거나 어렵지 않게, 편안히 즐겁게 들을 수 있게 구성되어 ‘축제’라는 성격에 잘 맞는다.

     

    스파이크 아시아 참관을 후배들에게 추천하시겠는가?

     

    물론이다. 기간도 불과 사흘밖에 되지 않아 아쉽고 출품작 수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인 칸 국제광고제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많은 좋은 광고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