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의식한 ‘5연속 동결’ … 시장 신뢰는 되레 흔들채권시장은 금통위 신호에 ‘발작’, 가격 앵커 역할 실종고환율·고금리 병행 속 수입물가·부동산·가계부채 부담 확산정책비용은 서민경제로 전가 … 실기(失期) 논란 피하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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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은
    15일은 한국 외환시장에 '굴욕의 날'로 기록될지 모른다.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국(미국 재무장관)의 구두 개입에 기대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지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매파적으로 동결하며 환율 방어 의지를 드러낸 직후에도 원·달러 환율은 다시 1470원대로 치솟았다. 환율 앞에서 통화당국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임이 드러난 셈이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고금리가 집값과 가계 이자 부담을 누적시키는 가운데, 통화정책의 방향성마저 흐려지면서 정책 실기(失期) 논란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이날 금통위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5연속 동결하면서 지난해까지 의결문에 포함했던 '금리 인하 가능성'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이 총재는 "환율이 결정 배경 중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인정하며 사실상 매파적 전환 신호를 보냈다. 새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1480원선까지 치솟자 금리 인하 시그널을 아예 거둬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총재의 의도와 달리 외환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구두 개입으로 15일 개장 환율은 1465원에 출발했지만, 금통위 의사록 공개 이후 다시 1470원대로 반등했다. 시장은 한은의 정책 신호를 "환율 대응에서 방향을 잃었다"는 메시지로 해석했고, 결과적으로 미국 구두개입의 효과는 반나절 만에 희석됐다. 

    채권시장 반응은 더 즉각적이었다.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3.46% 수준까지 치솟았고 2·3년물도 일제히 상승했다. 단기 스왑구간에서도 원화 유동성 프리미엄이 확대되며 발작적 가격 조정이 관측됐다. 금리 인하 기대를 접은 동시에 인상 시그널도 없었던 애매한 중앙은행 가이던스가 시장 변동성을 키운 셈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통화정책의 가격 앵커 역할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 금리 상승이 채권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채금리는 은행채 금리와 대출금리로 전이되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고정된 상태에서도 대출 금리는 추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실제 5대 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현재 연 3.91~6.21% 수준으로 작년 말 대비 상·하단이 모두 높아졌고, 변동금리의 기준인 COFIX도 지난해 11월 2.81%로 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금통위 결정이 동결이었지만 시장금리는 오르고 대출금리도 따라 오르는 역전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이 총재가 연일 강조하는 "환율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기조에도 비판이 이어진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자극하는 상황에서 금리 동결 자체가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해석이다. 12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7% 상승하며 6개월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두바이유가 3.8% 하락했음에도 평균 환율이 1467.40원을 기록하면서 가격 충격을 상쇄한 탓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역시 2%대 상승률이 4개월째 이어졌으며, 석유류·수입식품 가격이 크게 뛰었다. 

    부동산 역시 이 총재의 정책 프레임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금리 동결을 통해 금융안정과 주택시장 과열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밝혔지만 시장은 정반대였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48주 연속 상승했고, 1월 첫째 주 기준 상승률은 0.18%로 연율 환산 시 두 자릿수 상승률에 해당한다. 시장에서는 금리가 낮아지지 않아도 가계 유동성과 정책 기대가 집값을 떠받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가계부채도 통화정책의 중간 대응이 남긴 지연 비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동결을 이어가며 대출금리 하락이 지연된 가운데, 가계의 이자 부담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970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이자 부담은 서민에게 전가되고 자산가격은 되레 부의 격차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물경제 역시 추가 비용을 감당 중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 원가를 밀어 올리며 제조업 마진을 잠식시키고, 고금리는 내수를 억제하며 소비 회복 속도를 둔화시키고 있다. 반도체 등 수출 중심 업종은 호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내수 중심 산업은 회복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고환율·고금리' 환경을 버티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한국 경제가 폭망은 아니다"라며 기대를 주문하고 있다.

    결국 통화신호와 실물지표가 엇갈린 상황에서 이 총재의 정책 조합은 '어느 쪽의 비용도 감당한 채 어느 쪽의 효과도 얻지 못하는 구조'로 귀결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금리를 환율 때문에 내리지 못하고 집값 때문에 올리지도 못하는 가운데, 정책 부담은 물가·주거·대출·생활비 형태로 서민경제에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글로벌 IB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는 동결했지만 외환시장은 진정되지 않았고 채권시장은 변동성이 확대됐다"며 "중앙은행의 가격 앵커 역할이 약화되면 서민 경제는 물가·대출·주거 비용으로 비용을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