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다결국 독이 되고 만 1조2천억원
  • <방민준칼럼> 누가 ‘독이 든 복어’를 삼킬 것인가

    ◇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다

    현대차동차그룹이 웃고 현대그룹이 울었다.

    지난해 11월16일에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그룹이 웃었고 예비협상대상자로 밀린 현대자동차그룹이 땅을 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최성준 수석부장판사)가 4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의 채권단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서 ‘양해각서(MOU)를 해지한 것을 무효로 하거나 현대차그룹에 현대건설 주식을 매각하는 절차를 금지할 긴급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정함으로써 현대건설은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매각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현대그룹이 간발의 차이로 현대차그룹을 따돌리고 현대건설 매각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어 채권단과 MOU를 체결할 때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는 듯했다. 막강한 자금력의 현대차그룹이 고배를 든 것을 보고 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싱겁게 다윗의 승리로 끝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승리의 잔을 들기 무섭게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의 자금조달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우선협상대상자 자격박탈, 현대차그룹간의 맞고소사태, 채권단과의 법정싸움이 겹쳐지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승자의 저주인가. 남북경색 국면으로 동력을 잃은 현대그룹으로선 현대건설이 그룹의 기관차가 되어줄 것으로 믿고 전력투구했는데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자금이 독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 결국 독이 되고 만 1조2천억원

    결과적으로 현대그룹이 복어알이 제거되지 않은 복어를 넙죽 삼키고 쓰러진 꼴이 되고 말았다. 독을 품고 있는 복어알은 바로 현대상선이 조달한 자금이었다.

    5조1천억원의 조달자금 중 그룹 내 계열사를 통한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로 3조, 동양종금을 통해 7천억원, 나머지 1조2천억원을 현대상선이 조달하기로 했는데 바로 이 1조2천억원의 성격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 현대그룹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현대차그룹은 줄기차게 이 돈의 성격에 의문을 제기했고 채권단에서도 명확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런데 현대그룹이 이런 의문 제기에 시원스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룹은 처음엔 현대상선이 프랑TM 나티시스 은행에서 예금을 넣어둔 금액이라 했다. 그러나 자산총액이 총 60억 원밖에 안 되는 현대상선이 1조2000 억원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조사결과 이는 예금이 아닌 브리지론, 즉 대출금액으로 밝혀졌다.

    현대그룹이 이렇게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금력에서 우세한 현대차그룹을 제치기 위해 현대차그룹의 허를 찌르는 높은 금액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매각대금의 성격이 분명치 않자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명확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우선협상대상자의 자격 박탈을 경고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측은 프랑스 금융법을 들먹이며 나티시스 은행과의 거래내용 공개를 거부했고 이에 따라 자격을 박탈당했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을 상대로 MOU 해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현대그룹이 이런 곤경에 빠진 것은 전적으로 현대그룹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는 여지도 많다. 애초에 채권단이 현대그룹이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를 꼼꼼히 점검했다면 나티시스 은행의 자금이 이상하다는 점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런 의혹을 쉬쉬하며 뭣에 쫓기듯 MOU를 체결했다. 신중하지 못한 채권단이 현대그룹이 독이 든 복어알을 삼키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구?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작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이 법원 결정에 반발해 본안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매각작업 자체를 당장 중단시킬 수는 없다.

    현대건설도 내심 ‘가난한’ 현대그룹에 넘어가 힘겨운 경영정상화 길을 밟느니 주머니가 든든한 현대차그룹에 안겨 원기를 되찾는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현대차가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 현대그룹이 축배의 잔을 들다 포획물을 놓쳤듯 현대차도 어떤 독에 불의의 일격을 당할지 모른다.

    과연 누가 아무 탈 없이 ‘독이 든 복어’를 삼킬 수 있을까.

    <본사 부사장/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