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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를 통해 본 韓日언론의 수준차이
국가의 선진화를 가늠하게 하는 또 다른 척도는 바로 그 나라 언론의 뉴스전달 행태
장진성
쓰나미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는 뉴스를 접한 후 나는 일본 NHK를 서둘러 찾아보았다.
재난국으로서 우리 방송보다 그 현장을 더 빨리, 그리고 더 구체적이면서도, 심충적으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일본 방송은 그 엄청난 재해를 보도하면서도 침착한 분위기였다.재난의 현장도 대부분 원경처리해서 보여주면서 되도록 개인들의 안타까운 사정은 극히 제한하는 듯했다.
대신 급박한 정황 속에서도 교육받은 행동수칙대로 움직이는 시민들과, 질서정연한 대피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도중에 긴급뉴스로 제공되는 정부의 대책발표는 국민 모두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피해 상황과 향후 정세방향을 가늠하게 해주었다.한마디로 일본의 TV들은 개인보다 전체적인 분석에 집중하는 형식으로 국가적 재난 앞에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축이 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러한 일본을 “총체적 위기” “일본 열도 침몰하는가?”라는 과격한 제목으로 떠들어대는 우리 방송이야말로 말 그대로 재난방송이었다.
아나운서들의 멘트도 그냥 초토화라고 해도 될 걸 ‘완전한 초토화’란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사실을 사실보다 더 초토화했다. 그러한 자극적인 제목과 멘트들의 남발을 하는 우리 언론을 보며 일본과 이 정도로 차이 나는가 싶었다. 언론이란 뉴스의 정확성과 신속함만이 아니다. 사회를 깨우치고 선도하는 언론으로서의 도덕적 의무와 교양적 가치, 보편적 윤리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만명의 인명피해가 난 비극 속에서 한류나 걱정하는 저질뉴스까지 보게 될 때 나는 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만약 지금의 쓰나미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닥쳤다면 과연 우리 언론은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슬픔의 재난 속에서 더 아픈 자극적 제목을 찾기 위해 서로 혈안이 되지 않았을까?실제로 나는 천안함 폭침 때 통곡하는 한국만을 보여주는 우리 방송을 보며 “이 나라엔 슬픔밖에 없는가?”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다. 더욱이 그때 좌우이념이란 색깔까지 덧칠하여 혼란을 더 가증시키는 일부 언론을 보며 유언비어보다 나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고 묻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국가의 선진화를 가늠하게 하는 또 다른 척도는 바로 그 나라 언론의 뉴스전달 행태인 듯싶다. 무엇을 보도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도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나는 이번 일본의 쓰나미를 보며 선진언론이 있어야 선진국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진성 /탈북시인,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