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여성 인력 양성 및 근무여건 개선 강조여성 임직원 26.7%..임원 중 여성 고작 1.9%타그룹 인사정책에도 영향 미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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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한 이 회장이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배석한 가운데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 등 그룹의 여성 임원 7명과 함께 한 오찬 자리에서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이 회장이 여러 차례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지만, 삼성에서 여성이 임원으로 승진하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라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삼성은 계열사를 통틀어 여성 CEO가 배출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맡은 것이 전부다.
전체 삼성 임직원 21만명 가운데 여성 인력은 5만6천명으로 26.7%다.
4명 중 1명 이상이 여성이지만, 임원은 전체 1천760명 중 34명(1.9%)에 불과하다.
여성 인력이 생산 현장에 많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글로벌 기업으로 대외적으로 내놓기 민망한 수치다.
따라서 이날 이 회장이 "여성도 사장이 되면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으니 사장까지 돼야 한다"고 강조함에 따라 연말 정기인사부터 여성 인력의 대거 승진이 점쳐진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국내 최초로 대거 공개 채용한 대졸 여사원이 부장과 차장 등 중견간부로 올라가 임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어 앞으로는 여성 임원의 비율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이 15년 전 뿌려놓은 씨앗이 이제 싹을 틔울 시기라는 것이다.
그는 "여성 임원들이 정말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일을 잘하겠구나 하는 기대가 크다"고 격려했다.
이어 "여성 임원들의 말을 듣고보니 공통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어려움을 유연하게 잘 이겨냈다는 것이 느껴지고, 역시 유연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느꼈다"며 "능력 있고 유연하니 경쟁에서 질 이유가 없다. 이길 수 있고, 이겨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길게 1시간40여분간 진행된 이날 오찬에서 여성 임원들은 회사와 가정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솔직하게 얘기했고 이 회장도 이에 깊이 공감하고 관심을 표시했다고 배석한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전했다.
이 회장의 여성 중시 인력관은 이날 발언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그는 지난 4월21일 서초사옥에 처음 출근해 사내 어린이집을 둘러보던 중 대기 시간이 길다는 지적이 나오자 즉석에서 하나 더 지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삼성전자가 입주한 C동 1층(120명 수용)에 이어 내년 1월 개원을 목표로 삼성생명이 들어 있는 A동 3층에도 1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추가 설치하고 있다.
그는 이에 앞서서도 지론으로 "(여성인력 활용을 위해) 10년 후를 보고 사내 어린이집 확대를 검토하라. 그래야, 임직원 사기가 올라간다"고 근무 여건 개선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삼성은 17개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1천900여명의 임직원 자녀를 돌보고 있다.
이 회장은 또 1997년 쓴 에세이에서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으로, 인적자원의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그의 여성 인력관을 엿볼 수 있는 발언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이에 따라 당사자가 겪게 될 좌절감은 차치하고라도 기업의 기회 손실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요즘 '여성들'은 옛날 '여자들'이 아니다. 출산하는 것 빼고는 남자와 똑같지 않느냐" 등이 있다.
삼성이 산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이 회장의 이와 같은 '여성 중시 경영'은 다른 주요그룹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해 인사경영 전문지 'HR Insight'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상장기업 가운데 여성 임원을 두고 있는 업체는 21개에 불과했고 총인원도 51명에 지나지 않았다.
직원이 수만명에 이르는 현대차그룹에서는 지난 2009년에야 첫 여성임원이 배출됐고 포스코도 작년에 비로소 여성 임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 사장은 더욱 드물어서 오너 일가를 제외하면 주요 업체의 사장 가운데 여성은 거의 찾아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한마디가 재계의 화두가 되는 사례가 많았음을 감안하면 다른 그룹들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