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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양보없는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 갈수록 악화되는 재정부담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자체들이 정부에 큰폭의 세금 이양을 요구하고 나선 것. 선봉은 서울시가 맡았다.
그러나 정부 역시 지자체들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줄수는 없다는 입장이라 세금을 놓고 벌어질 정부-지방간 줄다리기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시는 현재 부가가치세의 5%인 지방소비세 비율을 20%로 상향 조정하는 세제 개편안을 마련, 정부에 건의했다고 13일 밝혔다.
시는 이날 오전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지난 1~2월 정부에 건의한 지방소비세 인상은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진작 이뤄졌어야 할 일”이라며 “이제라도 인상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시는 국세인 부가가치세 중 지자체에 배분하는 지방소비세 비율을 현재 5%에서 20%로 상향조정하고, 큰 틀에선 국세에 편중된 세수구조를 지방재정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부가가치세는 지역에서 창출된 경제 가치에 대한 세금임에도 국가에 95%가 귀속되고 나머지 5%만이 지자체에 배분되기 때문에 이를 20%까지 높여야 한다는 것.
부가가치세(VAT)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 재화의 수입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가치인 ‘마진’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시는 일본 25%, 독일 46.9%, 스페인 35%, 캐나다 50% 등 주요 OECD국가의 경우 부가가치세의 평균 40%를 지방에 이양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 안대로 20%까지 상향 조정하더라도 이들 국가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울은 140만명에 달하는 주간 유동인구, 세계5위 수준의 국제회의 개최, 외국인관광객 연간 1천만명 등 교통, 환경을 비롯 시정 전분야에서 특별한 재정수요가 발생하지만 이를 통해 얻어지는 부가가치세의 95%가 국가귀속된다고 덧붙였다.
시는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선 국세와 지방세간의 근본적인 세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우선 부가가치세 세원 일부의 지방이양을 건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는 부가가치세 지방배분 비율 인상 근거로 ▴1995년 지방자치 시행 후 국가사무의 지자체 이양규모가 계속늘고 있는데도 국세는 이양되지 않은 불합리한 세수구조 ▴정부 추진 국고보조 매칭사업에 대한 지자체 부담 가중 ▴서울지역의 추가적 재정 부담 발생 등을 들었다.
시에 따르면 1995년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2000년 이후 모두 1천709건의 국가사무가 지방에 이양되면서 자치단체 비용부담이 크게 늘어났지만, 재정이양은 거의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2010년 이전까진 0원이었으며, 2010년부터 지방소비세가 신설돼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5%를 지자체에 나눠주는 것이 전부다.
시는 지방자치 시행후에도 국세:지방세 비율이 8:2로 변함이 없다며 국세 위주의 세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세의 비중이 너무 낮아 지자체의 정부 의존이 심화되고 그 결과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올해부터 횡단보도 설치 등 교통안전에 관한 업무가 경찰청에서 각 지자체로 이관되는 등 1천314건의 국가사무가 지방으로 이양될 예정으로, 지자체의 재정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의 전망이다.
서울의 경우 재정자립도는 1위지만 자체수입의 57%를 25개 자치구, 교육청 등에 법정의무경비로 이전하게 돼 있어 실질적인 세입규모는 크게 낮다.
이에 더해 영유아 보육료 지원 확대 등 정부가 추진하는 매칭사업(국고보조사업)으로 인한 비용 분담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재정부담을 압박하는 주요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울은 분담율이 타 시도보다 최대 30%나 높아 국고보조사업으로 인한 부담액만 연간 9천3백억원에 이른다.
한편 시는 건의한 대로 지방소비세 전환율이 20%로 인상되면 약 10.3%의 세수가 증가해 재정부담에 다소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내다봤다. 시는 지방소비세 세율을 인상하더라도 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강종필 시 재무국장은 “각 지역의 실정과 행정수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재정권을 갖고 현장행정을 펼치는 것이 지방자치제의 취지에 부합한다”며 “진정한 재정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세에 편중된 세수구조를 근본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