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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소극적으로 임하자..
한 선배 아나운서 "방송-앵커 못하게 하겠다" 협박MBC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공정방송' 회복을 주장하며 123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아나운서 노조원 일부가 파업에 불성실한 후배에게 협박이나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고 있는 배현진 아나운서는 29일 오후 사내 인트라넷 자유발언대에 '배현진입니다'라는 제하의 글을 올려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기 위해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도 벌어졌다"며 "민주적 절차를 실천해야 할 노조 내에서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장면들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이의제기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기 위해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나아가 배 아나운서는 파업에 소극적이었던 자신에게 한 선배 아나운서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 같은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 앵커고 방송이고 절대 못하게 하겠다. 어떻게든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협박을 가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2월의 마지막 날, 모 아나운서 선배와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습니다. 이미 많은 선배들이 파업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저를 염려했었기에 같은 이유시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님 저 혼란스러워서 제 이름과 얼굴 걸고 당당히 참여하기 힘듦니다. 뉴스 앵커고 공명선거 홍보대사인데 정치적 색채를 가진 구호를 외치거나 그런 성격의 집회 자리에는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보에 사실확인이 명확히 되지 않은 채 실리는 내용들도 영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 화가 나서 부른거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거짓말이나 작은 진실은 덮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 같은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 앵커고 방송이고 절대 못하게 하겠다. 어떻게든 내가 그렇게 하겠다."
배 아나운서는 "과연 진실이란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눠 말할 수 있는 것이냐"며 "자신의 상식으로는 공정이라는 대의를 쟁취하고자, 수단이 거짓이어도 된다는 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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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측이 배현진 강제 하차시켜.." 거짓 멘션 리트윗
1월 30일부터 진행된 MBC 총파업에 참여했던 배 아나운서는 지난 11일 "파업의 명분과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회의를 느낀다"며 MBC 노동조합을 자진 탈퇴, 현업으로 복귀했다.
배 아나운서는 애당초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총파업에 돌입한 MBC 노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겨를조차 없었다며 "자신 외에도 파업의 명분과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선배들께서는 '입사 후 고속으로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 앉다보니 할 필요 없는 걱정까지 한다. 생각을 간단히 하라. 여자들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조직의 생리를 모른다. 그냥 따라와라 '며 저의 고민을 일축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파업이라는 최극단의 선택을 100% 이해 못하는 동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배 아나운서는 "총파업 돌입 직전, 뉴스데스크 방송 시간이 줄어 당분간 자신이 뉴스에서 빠지기로 협의가 됐는데 보도국 제작거부 농성 첫 날 SNS상에는 '사측이 배현진 앵커를 강제 하차 시켰다는 MBC 노조발 멘션이 활발히 리트윗됐었다"며 노조 측이 자신을 일종의 '선전도구'로 악용해 왔음을 밝혔다.
"뉴스 파행이 예상되는 비상상황에서 보도국 편집부는 수목금, 평일 뉴스데스크를 15분으로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스 시간 단축에 따라 co-anchor 에서 one-anchor로 대체 운영하기로 했고 당분간 제가 뉴스에서 빠지기로 협의했습니다. 그런데 보도국 제작거부 농성 첫 날 SNS상에는 '사측이 배현진 앵커를 강제 하차 시켰다는 MBC 노조발 멘션이 활발히 리트윗(RT)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었기에 노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습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이용마 노조홍보국장은 '몰랐다 미안하다. 확인 후 이름을 지워주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무수히 RT가 되어버린 뒤였습니다. 모르는 사이 사측으로부터 탄압받은 여자 앵커가 되었고, 이용마 국장에게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것에 제 이름 석자를 동원하지 않아주셨으면 하고 당부 드렸습니다."
◆ "파업이라는 선택, 100% 이해 못하는 동료 많아"
배 아나운서는 '배현진 앵커를 강제로 하차시켰다'는 MBC 사측의 횡포(?)가 노조에 의해 '무한 RT'된지 사흘 만에, 찬성률 69.4%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전체 노조원 939명 중 783명이 투표해 533명 찬성, 15명 무효, 235명 반대, 69.4%로 찬성 가결. 이전 파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찬성률이었지만 이미 '가결'된 사안이었기에 원칙대로 파업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물론 제작거부 기간이었기 때문에 뉴스 잔류, 하차 여부를 선택할 기회와 겨를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초 제 거취를 택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배 아나운서는 "자신은 뉴스 앵커로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아이템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앵커 멘트를 직접 작성한다"면서 "적어도 저희가 외압에 굴복해 불공정 보도를 했다면 '그냥 그런 것 같다. 마음에 안 든다' 정도가 아니라 '어느 날, 어느 뉴스' 등의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사죄드려야 하며, 다소 늦었더라도 노조 지도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해야하는지 확실히 해야 했다"고 말했다.
"9시 뉴스데스크의 제작 현장에 있었던 제 경험에 비춰 파업의 명분을 재검토 해야 하는지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파업의 시점과 파업 돌입의 결정적 사유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채 그저 동원되는 모양새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배 아나운서는 "입사 5년 만에 네 번째 파업을 맞고 있다"면서 "파업 피로를 덜기위해 많은 문화행사가 기획됐고, 마치 대학 축제 같은 즐거운 파업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파업돌입의 이유 등을 공유할 만한 장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MBC 노조 '좌편향'..이미 중립성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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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아나운서는 MBC 노조의 총파업 투쟁이 갈수록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가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적극적인 집회 참석을 유보해오던 중 아나운서 동료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동료들은 큰 충격과 박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여지를 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제게도 집회에 성실히 참여해 달라는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나가도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야당 측 국회의원과 진보 진영의 저명인사들이 차례로 초청되었고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알려지며 여러 번 정치적 성향을 밝혀온 연예인들이 방문해 파업을 독려했습니다."
그는 "초청 인사들의 말씀은 모두 지당했고, '공정방송을 지향하기 위해 언론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에 누가 이의를 달겠느냐"고 밝힌 뒤 "다만 '공정방송'과 '완벽한 언론 독립'을 기치로 내건 우리였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한 쪽 진영의 인사들에게 무게가 실리는 듯한 모습은 다소 위태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집행부인 한 아나운서 선배를 통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실책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 것이라면 다시 일어서는 것도 반드시 스스로여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힘을 빌리거나 특정 진영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배의 대답은 제 의도를 비껴갔습니다."
"보수진영 정치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우리 파업에 지지의사를 보내준다면 당연히 초청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서 못 부르는 것일 뿐."
배 아나운서는 "선배 아나운서의 이 말을 듣고 진보건 보수건 간에 '이미 자립 의지를 잃은 것인가' 허탈했다"면서 "언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의사 표현과 참여는 오로지 유권자로서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 방송 복귀 후, 동료·선후배 'SNS 맹공' 쏟아져..
배 아나운서는 "사상 유례없는 '끝장 파업'을 강행, 최장 파업 기록마저 갱신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조직 안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다"며 "방송에 복귀한 뒤 <원래 행태>, <뒤통수를 치는 구나> 또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자극적인 SNS 멘션들이 같은 회사 동료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이런 불안한 심리 상태의 방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MBC 한준호 아나운서는 배 아나운서가 현업에 복귀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린 아이들이 못된 것만 배워서. 선택을 존중하라. 이건 너무 판에 박힌 말 아닌가? 잘못했으면 혼도 내고, 알아듣게 만들어줘야 어른이지. 파업들도 제대로 안했으면서 무슨 대단한 일 하다 고통 받은 것처럼. 뭐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네"라는 글을 남겼다.
이어 "'멘붕', '멘붕' 하기에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오늘 같은 날 쓰는 말이구나. 드디어 내게도 '멘붕' 왔다. 올라간 후배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그대들이 그런 자리에 앉을 자격이나 있는 사람들인지"라고 말하며 '파업 대열'에서 자진이탈한 배현진, 양승은, 최대현 아나운서를 싸잡아 비난했다.
MBC 보도국 이남호 기자는 배 아나운서가 올린 심경글과 관련, "배현진 씨가 무슨 고민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올린 글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배 아나운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폭력 행사가 있었다는 부분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했다는 건지 배현진 씨와 같은 연차지만 이번 파업을 겪으면서 한번도 그런 일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며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인사위에 부치든 형사적 처벌을 하든 해결책을 찾으시기 바란다. 이런데서 이런 식으로 언급해서 그게 마치 노조 전반의 문화인 것처럼 악용하시지 말라"고 비판했다.
배 아나운서가 거론한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해서도 그는 "언론 공영성 훼손이 어느 정부에서 이뤄졌는지를 기억하기 바란다. 야당 인사들이 주로 참여했다고?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정권이 들어서서 같은 탄압을 한다면 그때는 반대진영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는 게 상식이고 당연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또 "배현진 씨는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무엇을 하셨나? 본인 스스로 말했듯 제대로 고민도 안 해보고 파업에 뛰어들었고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다시 앵커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스스로 언론인이기 위해 무엇을 노력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 배현진 겨냥, "공주병 환자" "거짓말쟁이" "앵무새" 맹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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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도 쓴 소리를 더했다.
노종면 앵커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배현진은 메인뉴스 톱이며 쌍방이 엄연히 존재하는 '권재홍 신체 충격' 기사를 일방이 써주는 대로 읽었고 결국 저질 조작 보도임이 드러났다. 정직? 중립? 배현진이 언급할 자격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정보도 명분은 옳단다. 하지만 파업이란 방법은 싫단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다른 무엇으로 공정보도를 위해 싸웠는가? 보도해야 할 기사 누락되고 정권 홍보 기사 넘쳐날 때 너희들은 그저 앵무새처럼 읽지 않았더냐"며 맹공을 퍼부었다.
MBC 박소희 기자와 김수진 기자도 각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배 아나운서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먼저 박소희 기자는 "읽지마세요. 거짓투성이입니다. 그녀에게 관심주지 마세요. 대응할 가치도 없습니다. 혹여 묻힐까 걱정됩니다"라고 밝힌 뒤 "저희는 그녀와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싸울 필요도 못느낍니다. 아나운서국에서 대응을 자제하는 것은 개인 대 조직의 싸움. 힘없는 여성에게 가하는 다수의 폭력으로 이 문제가 비춰지길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사람의 이름 조차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요"라고 힐난을 가했다.
김수진 기자는 "뒤늦게 배현진을 보며 자기합리화와 나르시시즘이 폭력이 된다는 걸 '실증적'으로 목격 중"이라며 "'내가 주인공이고 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하다'는 유아적인 의식만 버려도 세상을 깔끔하게 살 수 있는데. 아 배현진의 주인공 정신은 참 안쓰럽군요"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더 나아가 "'주인공 정신 = 공주병' 정신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건 인간 본성에 자리잡은 이 질환을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당신은 이기고 있나요?"라고 말하며 배 아나운서를 공주병 환자로 규정하는 발언까지 내뱉었다.
그러나 김 기자는 이튿날 자신의 트위터에 "제 트위터를 보고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배현진 아나운서를 공격하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혹 배 아나운서가 상처 받았다면 그 역시 미안합니다"란 사과글을 올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 "MBC 사측, 배현진을 나치 체제하 선전도구로 이용"
한편, 이용마 노조홍보국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배 아나운서의 '작심 고백'과 관련, "솔직히 배현진 아나운서가 제대로 검증받지 못하고 9시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으면서 갑자기 대한민국 9시 뉴스의 중요한 메인 인물인 것처럼 부각됐다"면서 "사측이 배현진이라는 스타성을 이용한 상품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치 체제하에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홍보국장은 "사측에서는 권재홍 앵커를 통해서 노조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려는 음모가 있었는데 실패로 귀결이 됐고, 이런 상황에서 김재철 사장에 대한 엄청난 비리들이 폭로가 되면서 사측이 코너에 몰렸다"며 "사측이 복귀한 사람을 붙잡고 노노 갈등을 유발하려고 갑자기 카드를 꺼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배 아나운서를 선배 아나운서가 협박했다는 글에 대해서도 "누가 누구를 앵커를 못하게 하는 것은 MBC 시스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모 아나운서 선배라는 얘기를 빌어서 말도 안되는 시스템을 얘기하는데, 그런 시스템이라면 배 아나운서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절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음은 MBC 배현진 아나운서의 '심경 고백글' 전문
"배현진입니다"
103일간의 파업 후, 노조 탈퇴,
방송에 복귀한 후 동료들이 SNS상에 남긴 멘션들이 여럿 기사화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 개인적인 고민과 결단에 의해 현업에 복귀하겠다 밝혔을 뿐인데 제 의지보다 더 폭넓은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신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던 그 간의 제 고민에 대해 정직하게 밝히는 글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일련의 상황을 낱낱이 이야기 하며 제 결정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안타깝습니다.
파업 참여 과정, 뉴스 하차는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수순
지난 1월 25일 수요일, MBC 보도국 기자회는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의 퇴임을 요구하며 사흘간의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뉴스 파행이 예상되는 비상상황에서 보도국 편집부는 수목금, 평일 뉴스데스크를 15분으로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스 시간 단축에 따라 co-anchor 에서 one-anchor로 대체 운영하기로 했고 당분간 제가 뉴스에서 빠지기로 협의했습니다. 그런데 보도국 제작거부 농성 첫 날 SNS상에는 '사측이 배현진 앵커를 강제 하차 시켰다는 MBC 노조발 멘션이 활발히 리트윗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었기에 노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습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이용마 노조홍보국장은 " 몰랐다 미안하다. 확인 후 이름을 지워주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무수히 RT가 되어버린 뒤였습니다. 모르는 사이 사측으로부터 탄압받은 여자 앵커가 되었고, 이용마 국장에게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것에 제 이름 석자를 동원하지 않아주셨으면 하고 당부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토요일, 노조는 '1월 30일 월요일 06시부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총파업 찬반 투표는 제작거부 기간 중 함께 진행되었고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전체 노조원 939명 중 783명이 투표해 533명 찬성, 15명 무효, 235명 반대 69.4%로 찬성 가결. 이전 파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찬성률이었지만 이미 '가결'된 사안이었기에 원칙대로 파업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물론 제작거부 기간이었기 때문에 뉴스 잔류, 하차 여부를 선택할 기회와 겨를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초 제 거취를 택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배현진, 왜 무엇을 고민하게 됐나
저는 뉴스 앵커로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아이템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앵커 멘트를 직접 작성합니다. 적어도 저희가 외압에 굴복해 불공정 보도를 했다면 '그냥 그런 것 같다. 마음에 안 든다' 정도가 아니라 '어느 날, 어느 뉴스' 등의 실증적인 사례를 들어 사죄드려야 합니다. 다소 늦었더라도, 노조 지도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해야하는 지, 9 시 뉴스데스크의 제작 현장에 있었던 제 경험에 비춰 파업의 명분을 재검토 해야 하는 지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파업의 시점과 파업 돌입의 결정적 사유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채 그저 동원되는 모양새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들께서는 '입사 후 고속으로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 앉다보니 할 필요 없는 걱정까지 한다. 생각을 간단히 하라. 여자들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조직의 생리를 모른다. 그냥 따라와라 '며 저의 고민을 일축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파업이라는 최극단의 선택을 100% 이해 못하는 동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입사 5년 차이고, 파업은 네 번째입니다. 연이은 파업 피로를 덜기위해 많은 문화행사가 기획됐고, 마치 대학 축제 같은 즐거운 파업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먼저 황급했던 파업돌입의 이유 등을 공유할 만한 장이 마련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하여-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 생각임을 먼저 밝힙니다.
적극적인 집회 참석을 유보해오던 중 아나운서 동료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동료들은 큰 충격과 박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여지를 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제게도 집회에 성실히 참여해 달라는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나가도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야당 측 국회의원과 진보 진영의 저명인사들이 차례로 초청되었고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알려지며 여러 번 정치적 성향을 밝혀온 연예인들이 방문해 파업을 독려했습니다. 초청 인사들의 말씀은 모두 지당한 말씀이었습니다. 공정방송을 지향하기 위해 언론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 이 사실에 누가 이의를 달겠습니까. 그러나 비단 '진보 인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방송'과 '완벽한 언론 독립'을 기치로 내건 우리였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한 쪽 진영의 인사들에게 무게가 실리는 듯한 모습은 다소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집행부인 한 아나운서 선배를 통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실책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 것이라면 다시 일어서는 것도 반드시 스스로여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힘을 빌리거나 특정 진영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배의 대답은 제 의도를 비껴갔습니다.
"보수진영 정치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우리 파업에 지지의사를 보내준다면 당연히 초청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서 못 부르는 것일 뿐"
진보건 보수건 간에 '이미 자립 의지를 잃은 것인가. 허탈했습니다. 4.11 총선 후 노조의 행보는 이전에 비해 고요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야당의 총선 패배로 노조가 소위 멘탈 붕괴 상태라는 식의 소문이 돌고 돌아 제게도 들어왔습니다. 물론 노조는 곧 사실무근이라며 공식 반박했습니다. 정말 소문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의사 표현과 참여는 오로지 유권자로서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파업이 이 무게 중심을 잃고 있지 않나 우려됐습니다.
선배의 엄포, 진실의 무게는 과연 잴 수 있는가 의문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2월의 마지막 날, 모 아나운서 선배와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습니다.
이미 많은 선배들이 파업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저를 염려했었기에 같은 이유시냐 물었습니다.
"선배님 저 혼란스러워서 제 이름과 얼굴 걸고 당당히 참여하기 힘듦니다. 뉴스 앵커고 공명선거 홍보대사인데 정치적 색채를 가진 구호를 외치거나 그런 성격의 집회 자리에는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보에 사실확인이 명확히 되지 않은 채 실리는 내용들도 영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 화가 나서 부른거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거짓말이나 작은 진실은 덮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 같은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 앵커고 방송이고 절대 못하게 하겠다. 어떻게든 내가 그렇게 하겠다"
"그런 논리라면 계속해서 진정성에 의심 갖는 제가 이쯤에서 더 귀찮게 묻지 않고 그만 두는 게 맞겠네요"
"...... 그건 안돼. 그렇게 되면 노조가 안 된다. 그리하겠다면 지금 내가 무릎 꿇고라도 말려야 한다. 휴......그만 가자. 소화 안 된다"
만남은 아무 소득없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이란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묻고 싶습니다. 공정이라는 대의를 쟁취하자고 수단이 거짓이어도 된다는 건 제 상식으론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동료간 인신 공격. 어떻게 가능해졌나
사상 유례없는 끝장 파업. 최장 파업 기록 갱신.
한 달 두달 월급을 못 받고 상황이 악화 될수록 조직 안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방송에 복귀한 뒤 < 원래 행태 >, < 뒤통수를 치는 구나 > 또는 < 두고두고 후회할 것 > 등 자극적인 SNS 멘션들이 같은 회사 동료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이런 불안한 심리 상태의 방증이라 생각합니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이의제기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기 위해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민주적 절차를 실천해야 할 노조 내에서 절대로 목격되어선 안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 아닌 누구라도 어떤 일에 참여의 의미가 없다 판단될 때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것, 아파도 이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두거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고쳐나가자는 건강했던 마음이 일부 변질되고 있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마지막 고백과 약속
저 또한 바른 방송인, 바른 언론인의 화두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파업 내내 고민한 것입니다. 다수가 속한 조직에서 나오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파업은 언젠가 끝납니다. 상황을 지켜보며 눈치껏 참여하다보면 더 환영받으며 복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점점 더 의의를 잃어가고 있는 제가 눈치 보는 것 또한 비겁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 소신에 의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의 뜻, 존중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신분은 비노조원인 MBC 아나운서입니다. 노조에서 나왔다고 어느 정권 편이니 사측이니 하며 편을 가르려는 시도, 그 의도 매우 불쾌합니다.
여전히 제게 가장 준엄한 대상은 시청자뿐입니다.
진정성 있는 대의명분과 정당한 수단을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한 두려움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