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가 科學을 떠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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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민주화’는 여, 야가 다 같이 공약한 것이라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어느 당이 집권하든 시대적인 추세가 되었다. ‘경제 민주화’란 말이 학문적으로 있는 말이냐 없는 말이냐 하는 것은 학자들이 따질 문제다. 그런 용어가 있든 없든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닥칠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정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란 대체 무엇인가. 두 가지다. 재벌개혁과 복지 확충.

      왜 재벌개혁인가? 이른바 ‘양극화’란 것 때문이다.
    중산층과 자영업자 등, 사회의 중간 허리가 몰락하는 전반적인 ‘빈곤화’ 현상이 이런 논의를 정치, 경제, 사회의 어젠다로 성립시켰다. “재벌을 때린다고 해서 ‘빈곤화’ 문제가 해결 되는가?” “재벌을 때리면 카타르시스는 될지 몰라도 외국자본이 그것을 먹는 건 괜찮은가?”라는 일각의 ‘나름대로의’ 경제 논리가 있다. 그러나 그건 작금의 한국 여, 야 제도정치권에선 원군(援軍)을 별로 얻지 못하고 있다. 그 만큼 “재벌은 개혁돼야 한다”는 정치논리가 지배적인 담론이 되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여, 야가 “재벌 개혁은 한다”는 컨센서스를 이룬 만큼 이것을 더 이상 ‘정치 싸움’ 거리로 써먹지 말고 ‘과학’으로 다뤄야 하겠다는 것이다. 왜? 경제는 정밀기계처럼 민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치’와 ‘정서’의 문제로 다룰 경우엔 국민경제 전반은 물론, 재벌개혁이 기대하는 ‘빈곤화 대책’마저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재벌은 개혁돼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나아가 ”어떻게 하면 재벌의 ‘너무 심한‘ 탐욕, 과도한 권력화, 불공정 행위, 부당거래, 불법과 편법 행위는 막되, 국민경제의 또 다른 손실(예컨대 矯角殺牛, 소뿔 고치려다 소 죽이는)은 초래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공동의 어젠다로 삼았으면 한다. 한 번 망가지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것이 경제이기 때문이다.

      복지 또한 여, 야 모두의 어젠다로 성립했다.
    문제는 복지의 당위성이 아니라, 재정건전성의 문제로 귀착한다. 서유럽 형(型) 복지국가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으로 보편적 복지를 구현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일부 국가들에서 그 복지국가가 재정파탄 국가가로 전락하는 사례를 목도하고 있다. 이것은 서유럽 복지국가 모델이 더 이상 항구적인 ‘마술 지팡이’만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 야는 이 교훈을 간과하지 말고 복지, 재정건전성, 조세부담율이 비교적 서로 얼추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찾아 의견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것 역시 정치 싸움의 도구로 사용할 게 아니라, 과학적 접근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인, 정치집단, 이익집단, 사회운동 세력, 그리고 대중이 과연 그런 냉철한 과학적 접근을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선거전은 과학이 아니라 무책임할 정도의 과대광고와 무한 판촉경쟁으로 갔다.
    대중은 일단 겪어보고서야 아는 성향이 있다. 이게 불가항력의 현실이라면 모두가 한 번 겪어볼 수밖에... 지금은 논리의 계절이 아니다. 질풍(疾風)의 계절이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