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대자본, 한국 경제 전반 잠식 중고려아연 공격 나선 MBK에도 中자본 투입핵심기술 자본·인재 이탈 등 국부 유출 우려MBK 인수 시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도 차질고려아연, 국가핵심기술 인정 등 방어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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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대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 경영권을 노리는 사모펀드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공세의 이면에는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하려는 중국 자본의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은 지난 1월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모습ⓒ뉴데일리DB
중국의 대(對) 한국 공략에 대한 대응이 시대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수법이 중층적이고 교활하다. 때론 은밀하게, 필요할 땐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낸다. 중국은 한국을 전세계에 걸친 초한전(超限戰·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무제한 전쟁)의 첫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바로 이웃한 한국을 통해 초한전 역량을 시험하고 완성시켜 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충돌이 "글로벌 대리전 양상을 갖는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의 한국 경제 침투와 그에 따른 후폭풍, 대응 방안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중국이 막대한 자본력과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운 물량 공세로 우리 경제산업 전반을 잠식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 시장 잠식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치밀하게 진행 중으로, 단순한 경제적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주권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에 대한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탈취 시도는 중국 자본의 한국 침투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MBK파트너스의 주요 투자자에 중국 국부펀드가 포함된 것으로, 흔한 재계의 경영권 분쟁의 모습과 달리 정치·사회적 이슈로 조명되며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실제 고려아연 사태 초반 만해도 재계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싸움을 단순한 분쟁으로 여겼다.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가 함께 설립해 7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아름다운 동업’이 깨어질 위기에 처한 것을 안타깝게 보면서 두 가문이 화해에 이르길 기원해 주는 정도였다.지난해 9월 영풍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이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재계 경영권 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사례는 많다. 그러나 영풍처럼 반세기 넘게 이어온 동업 관계를 끝내면서 금융자본을 끌어들인 일은 초유의 사태여서 이목이 쏠렸다. -
- ▲ (왼쪽부터)강성두 영풍 사장,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 ⓒ연합뉴스
특히 고려아연과 같은 우량기업이 하루아침에 사모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광경을 목도한 재계 전반에 불안감이 조성됐다. 고려아연 사태는 더 나아가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과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치·사회권에서도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MBK 투자자에 中 CIC도 참여 … 국부 유출 논란 격화MBK파트너스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로, 투자금을 모집할 때 다양한 글로벌 투자자(LP)로부터 자금을 유치한다. MBK파트너스의 투자자 가운데 중국의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국부 유출 논란에 불을 지폈다.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투자자 중 중국 연기금도 있지만 지분이 5% 안팎에 불과하다”며 중국 자본 비중이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을 향후 중국에 매각할 계획이 없고, 핵심기술 및 인재의 해외 유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MBK파트너스의 거듭된 해명에도 적대적 인수합병(M&A)로 인한 비철금속과 희소금속 수급 불안 가능성, 산업 생태계 교란,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초우량기업 특성과 시장 내 위치를 고려할 때 국내에선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김 부회장은 현재 시가총액 15조원 규모의 고려아연을 이후 30조원 기업으로 키운다는 포부다. 엑시트(투자금 회수)는 예정된 일인데, 국내에서 인수자를 찾기란 요원해 보인다. 결국 ‘쪼개 팔기’ 아니면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공고히 하려는 중국 자본에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국가기간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년 아연을 비롯해 연(납), 은, 동(구리) 등 비철금속 약 10종류를 세계 최대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 전자,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의 기초소재로 쓰인다.더욱이 안티모니(안티몬),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전략광물은 고려아연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해 공급한다. 이들 전략광물은 야간 투시경, 탄약, 원자력 잠수함 등 방산 필수소재일 뿐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첨단산업에 폭넓게 활용된다. -
-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중국은 지난해 9월 안티모니에 이어 올 2월 텅스텐, 몰리브덴,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5개 전략광물 품목에 대해 수출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첨단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에 대항하면서, 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중국의 핵심광물 통제가 심화하며 세계 공급망에서의 고려아연 역할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은 2020~2023년 비스무트를 중국(67%)에 이어 한국(23%)에서 많이 수입했다. 고려아연은 연 150톤 가량의 인듐을 세계 시장에 공급 중으로, 미국으로도 상당량을 수출하고 있다. 안티모니의 경우 매년 생산량의 30%를 유럽과 일본에 수출 중이다.美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 중국의 공급망 통제력 더 강화"고려아연이 탈중국 공급망 형성을 위한 핵심에 자리하면서 미국의 고려아연 사태에 대한 관심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주요 안보 이슈로 보고 있다. 중국의 고려아연 인수 시 미국의 공급망 또한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미국 연방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소속인 잭 넌 의원(공화당)은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상무부에 보냈다. 넌 하원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다이앤 패럴 상무부 차관보에 보냈다는 서한을 공개했다.이 서한에서 그는 “중국과 연계된 기업들이 MBK파트너스가 주도하는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정제 아연 생산업체인 고려아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핵심 광물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려아연 사태가 단순한 기업 경영권 분쟁을 넘어 지정학적, 경제적 패권 경쟁의 맥락에서 다뤄지는 양상이다. 앞서 미국 의회 핵심광물협의체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에릭 스왈웰 연방하원의원도 지난해 12월 국무부 차관에 서한을 보내 고려아연의 기술과 공급망 보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
- ▲ 지난 1월 23일 서울 중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총장에서 노조가 적대적 M&A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미국은 고려아연이 중국 자본의 직간접적 통제권에 들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투자자금 가운데 CIC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작음을 떠나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는 곧 중국 자본과 연결되는 것이어서 미국 정부에 경고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사모펀드의 공격으로 고려아연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이 없다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의 확전 속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시장 내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2018년에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산 비스무트에 관세를 적용하면서 한국산 비스무트의 미국 수입량이 증가한 바 있다.태양전지, 열전소재, 축전기, 자동차 부품 등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텔루륨 경우 고려아연이 연간 100~200톤 생산하고 있다. 이번 중국의 전략광물 통제 조치와 맞물려 중국산을 점차 대체하면서 글로벌 각국의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려아연은 적대적 M&A 시도로부터 경영권을 지켜내고, 국가기간산업과 글로벌 공급망 핵심 기업으로서 역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경영권 분쟁이 격화한 지난해 9월 정부에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에 대해 국가핵심기술을 신청, 인정받은 것도 국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은 경제 안보 이유에 따라 정부 승인이 있어야 외국 기업에 인수될 수 있다. 고려아연 인수 시 엑시트를 위해 재매각해야 하는 MBK파트너스에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