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강판 업체 은밀한 담합, 치밀한 조사끝에담합 꼼짝마! "시치미 떼면 더 악착같이 조사"
  • 자료를 모두 숨겼는지
    캐비넷은 '텅텅' 비어 있었다.

    조사관은 '캐비넷에 있던 자료가 다 어디갔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거 캐비넷 아니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캐비넷 위에 있는 화분을 가리키며 '화분 받침대'라고 우기는 거였다.

    공정거래위원회 안혜연(사진 오른쪽)-김기수 제조업 감시과 조사관은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황당한 '조사 방해'를 당해도 절대 화내지 않는다고 한다.

     "(해당 기업) 구성원으로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거겠죠."
     - 김기수 조사관

     "(자료를) 뺏긴 실무자는 문책을 당하거나 그래야 하는데…."
     - 안혜연 조사관

     

  • 최근 김기수-안혜연 두 조사관은 강판 제조 7사의 다년간에 걸친 가격 담합행위를 밝혀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월의 공정인'으로 선정됐다.

    '이달의 공정인'이란 창의적인 사고와 열정을 가지고 업무를 처리하여 업무효율성 및 고객만족도 제고에 기여한 직원을 매달 선정·포상하여 직원들의 그간 노고를 격려하는 제도다.

    두 조사관은 제보를 받고 '냄새'부터 맡았다.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자 연달아 다른 업체도 가격을 올려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

    곧바로 치밀한 시장분석과 증거확보 및 법리검토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모든게 생소했던 강판 판재류 시장이어서 제품 관련 용어·제조과정·유통경로 등도 함께 공부했다.

     "못해도 8시까지 출근했고, 퇴근은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조사가 끝나면 담당자들끼리 사무실에서 자료보고 토의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새벽이 될 때가 많았어요."
     - 안혜연 조사관 

    물론 이번에도 관계자들은 조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질쏘냐. 제대로 파기되지 않거나, 캐비넷 구석에 처박혀있던 자료를 모아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갔다. 

    결국 강판 제조 업체 관계자들의 담합은 '동창', '소라회', '낚시회', '강남' 등 여러 가지 은어를 사용한 은밀한 모임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니언시 제도(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덕분에 진술도 받아냈다. 이 제도는 담합 사실을 다른 회사보다 먼저 고백한 회사에 과징금을 면제해준다.

     "자기들도 서로 못 믿어요. 한 명이라도 배반하면 큰 일 나거든요. 입 맞추지 못했을 겁니다."  - 안혜연 조사관

     "여러 업체에서 들은 정보로 A업체에 '누구누구가 어디에서 모였다'고 구체적 실명과 장소를 거론하면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김기수 조사관

    이들은 할증료 도입이라는 편법을 통해 원가인상분을 수요자에게 전가시키는 '신종 수법'까지 철저히 밝혀내 관련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

  • 안혜연 조사관은 지난해에도 '5월의 공정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 조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젊은층에 큰 인기를 끈 '노스페이스'가 본사 차원에서 일정 가격 이하로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 강제한 걸 밝혀낸 것.

    "공정위 조사가 직권조사라 자료를 요청하면 왜 요청하냐고 묻기도 해요. 직원 이메일 몇개에서 본사에서 보낸 공문을 발견했죠." - 안혜연 조사관

    조사 결과 '노스페이스'는 본사 사원인 것을 속이면서까지 할인판매 여부를 감시했고, 무려 14년이나 이 같은 불공정 행위를 지속했다.

    김기수-안혜연 조사관은 "뻔히 보이는데 시치미 뚝 뗀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곳을 조사하는 동안 자료를 찢어 찢어 뒷주머니에 넣는 사람도 있었어요. 분위기가 도망갈 것 같더라구요. 다른 직원들도 불러 '저 사람이 자료 숨긴 것 같다'고 해야 꺼내요."
    - 김기수 조사관

    "갑자기 외장 하드를 창 밖으로 집어던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제품을 판매하러 다니는 영업 사원한테 '제품 가격'을 물어봤는데 모르는 척 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 안혜연 조사관

    여기서 팁! 이렇게 발뺌하면 그 기업에 도움이 될까? 정답은 'NO'다. "더 악착같이 조사"하게 된다는 것. 공정위 조사관들을 만나면 순순히 조사에 협조하는게 상책인 듯 하다.

    "굳이 힘들게 해서 뭐하나 싶냐는 생각도 들지만, 모른 척 하고 넘어가기가 힘듭니다. 한번 생각해보면 그런걸 그냥 봐주게 되면 업계에 다 퍼질 것 아닙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큰일나죠(웃음)."
    - 김기수 조사관

    참고로, 조사에 협조하면 '정상 참작'도 된다고 한다.
    단, 처음부터 순순히 응할 것!
    한 번 '발뺌'은 영원한 '발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