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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달리듯 경쾌한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자 일순 주변이 조용해진다.
이내 다음 곡이 왁자지껄 이어진다.
비제의 [카르멘].
관객들이 서서히 몸을 들썩이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여기는 동대문 시장.
주차장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라시안 필하모닉이다.
지휘자 금난새가 전통시장을 공연 무대로 바꿔버렸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도는 지난 24일 오후 8시 30분.
동대문 남평화시장에서 열린 무료 공연 [금난새의 왁자지껄 클래식콘서트]의 풍경이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벌어진 클래식 공연에 시장 상인은 물론,
지나는 쇼핑객들과 관광객들이 [구경났다].
정장 차림의 관객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옷가게에서, 혹은 밥집에서 [도대체 어떤 게 오페라야] 하는 궁금증에
앞치마 차림으로 나온 시장 상인들과 장보러 나왔던 시민들이 객석을 꽉 채웠다.
그동안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며 건물 로비, 미술관, 야외 광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해온 지휘자 금난새도
시장에서 음악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다음 주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연주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연주하는 것이나 동대문 시장에서
연주하는 것이나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오늘 함께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지휘자 금난새시장에서 열리는 음악회이지만 레퍼토리는 팝이나
가요를 섞은 연주 형식이 아니라 정통 클래식 작품이다.
트럼펫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주페의 [경기병 서곡]으로 시작하는 음악회는
비제 오페라 [카르멘] 전주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클린카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등
오케스트라의 장엄함을 맛볼 수 있는 곡이다.
금난새는 “특히 카르멘이란 곡은 처음에 요란하게 시작한다.
분위기가 왁자지껄한 동대문시장과 같아 준비했다”며 관객들을 흥분시키기도.
관객들은 뜻하지 않은 행운의 공연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거나 몸을 흔들기도 하고 [브라보]를 외치기도 한다.“우연히 이런 자리가 마련된 지 전혀 모르고
음악에 이끌려서 왔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고
동대문 시장에서 이런 클래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쇼핑하다가 들린 장진숙 씨“전통시장과 어색했던 고급문화를 도입해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만한 공연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장 내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라는 공연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머지않았으면 한다”
-추계예술대 정원철 교수“뜬금없이 클래식이라고 해서 [웬 클래식] 그랬는데
들어보니까 지겹지도 않고 지휘자가 재미있게 해 주셔서
경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공연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옷가게를 하고 있는 상인 이경숙 씨수년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선 [오페라 플래시 몹]이란 형태로 광장이나 쇼핑몰에서
클래식 깜짝 공연이 종종 벌어져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에 그 감동을 전해왔다.
2009년 스페인 발렌시아 시장을 필두로 그 무대는 전통시장으로 옮겨갔다.
필라델피아, 뉴욕, 암스테르담 등 전통시장을 찾은 쇼핑객들은
뜻하지 않은 클래식 공연에 놀라움과 감격을 맛보았다.
2010년 한국에서도 부산역, 대구역 등에서 대학생들의 오페라 [플래시 몹]이 펼쳐졌다.
예고없이 갑자기 모여 단체 행동을 하는 [플래시 몹]과 달리,
예고하고 객석을 미리 준비하는 방식이었지만
전통시장에서 정통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친 것은 금난새가 처음이다.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시장에서 울려 퍼진 클래식의 선율은
상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익숙한 음악들이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비 내리는 가을밤, 잊을 수 없는 음악의 감동이
관광객과 쇼핑객들에게 깊은 추억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