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에 산업계 '버티기 총력'GS칼텍스 대정비 연기 … 나프타 생산 확대조선업계 에틸렌 수급 비상 … 재고 소진 우려
  • ▲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 ⓒHD현대
    ▲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 ⓒHD현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중동발 원료 공급망이 흔들리자 국내 산업계가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버티기 모드’에 들어갔다. 정유·석유화학 기업은 정비 일정을 늦추며 생산량을 유지하고, 조선업계는 핵심 소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단기 수급 위기를 넘기려는 모습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는 전남 여수공장에서 이달 중순 실시할 예정이던 대정비(Turn Around·TA) 일정을 5월로 잠정 연기했다. 대정비는 생산 설비 가동을 멈추고 수천억원을 들여 공정을 점검·보수하는 정기 작업이지만, 최근 원료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생산 중단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로 중동 지역 긴장이 높아지면서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 불안도 확대되는 상황이다. 정유업계는 대정비를 미루더라도 공장 가동을 유지해 나프타 생산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순히 원료 확보뿐 아니라 국내 연료유 시장의 가격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유사들이 순차적으로 대정비에 돌입할 경우 공급 공백이 커질 수 있어 생산량을 유지해 수급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수록 시장의 불안 심리가 확대된다”며 “생산 차질을 최소화해 원료와 연료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중동발 원료 공급 차질로 선박 건조 공정에 필요한 특수 가스인 에틸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에틸렌 물량 확보 지원을 요청했다. 에틸렌은 나프타를 원료로 생산되는 기초 화학 소재로, 조선소에서는 선박 철판 절단과 가공 공정에 사용된다.

    일부 조선소는 현재 확보한 재고가 빠르면 2주 안에 소진될 수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대체 가스로 액화석유가스(LPG)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LPG 역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평가다.

    이번 수급 불안은 중동에서 들여오는 나프타 공급이 막힌 영향이 크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나프타는 절반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입 물량의 상당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 역시 약 70%에 달한다.

    여기에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여천NCC가 최근 고객사에 공급 지연 가능성을 통보하면서 업계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정부는 화학업계가 확보한 재고 물량을 우선 활용해 단기적인 생산 차질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화학협회와 협력해 긴급 물량을 조선소에 우선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업계에서는 중동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원료 수급 불안이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에틸렌 공급 문제가 장기화하면 생산 공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