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0.50%, 10년 만에 최고 수준NPL 커버리지 175%로 하락 … 손실 흡수력 약화 조짐환율 1500원 돌파·유가 100달러, 기업 재무 부담 확대중동 익스포저 32조 … 전쟁 장기화 땐 금융권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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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전쟁이 격화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악몽이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모펀드 환매 사태가 확산하면서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길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영끌족과 빚투족은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곳곳에서 퍼지는 부실의 악몽이 더는 먼 발치에서 다가오는 '회색 코뿔소'아 아니라, 바로 앞에 다가온 현실일지 모른다. 미국 저명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Bofa 마이클 하넷 최고투자전략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온 나라가 '코스피 5000'에 취해 있는 동안 부실의 암덩어리는 경제 주체 곳곳에 빠르게 퍼지는 양상이다. 뉴데일리는 경제 전반에 퍼지는 실물과 금융 위기의 모습을 시리즈로 진단한다. 


    금융권의 '조용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들고 기업대출 연체율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은행들은 다시 충당금을 쌓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리스크 관리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실물경제 충격이 금융 시스템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이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근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를 확대하고 대출 자산 건전성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 부담이 이어질 경우 기업과 자영업자의 상환 능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을 중심으로 잠재 부실 가능성을 집중 점검하는 분위기다.

    실제 건전성 지표도 악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0.21%에서 지난해 말 0.50%까지 상승했다. 연체율이 0.5% 수준에 도달한 것은 2015년 이후 약 10년 만으로, 기업대출 부문에서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72%, 중소법인 연체율은 0.93%까지 올라 1%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부실 대응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도 낮아지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평균 NPL 커버리지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75%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30%포인트 이상 낮아진 수준이다. NPL 커버리지 비율은 고정이하여신 대비 대손충당금 비율을 의미하는데 비율이 낮아질수록 손실 흡수 여력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다시 충당금 적립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주요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대체로 160~1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농협은행이 약 223%로 가장 높고 우리은행 약 180%, 국민은행 174%, 신한은행 164% 수준이다. 이는 부실채권 규모의 약 1.6~1.8배에 해당하는 충당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충당금을 다시 쌓기 시작한 것은 잠재 부실 확대를 미리 대비하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며 "표면적인 실적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위기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어적 대응이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 ▲ 1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요격 과정에서 발생한 파편에 외벽 손상을 입은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 ⓒ로이터 연합뉴스
    ▲ 1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요격 과정에서 발생한 파편에 외벽 손상을 입은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 ⓒ로이터 연합뉴스
    외부 환경도 금융권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1원까지 치솟으며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00원선을 넘어섰다. 환율이 주간 거래 기준 1500원을 돌파한 것은 2009년 3월 이후 약 16년 만이다. 같은 시각 국제 유가도 중동 전쟁 리스크 속에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환율 상승은 은행 건전성에도 직접적인 부담 요인이다. 원화 약세가 심화될 경우 외화 부채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환차손이 확대되면서 대출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기업의 외화표시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약 6900억달러(약 90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환율이 100원 상승할 경우 외화부채의 원화 환산 규모는 약 90조원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정유·항공·해운 등 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환율 상승 충격이 기업 재무에 빠르게 반영될 수 있다.

    유가 상승 역시 기업 재무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국제 유가가 20달러 상승할 경우 국내 성장률이 약 0.45%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0.6%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유화학·운송·제조업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빠르게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도 변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금융회사들의 중동 익스포저는 220억달러(약 32조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은행 노출액이 190억달러(약 26조원)로 전체의 86% 이상을 차지한다. 구조적으로는 대출 143억달러, 지급보증 35억달러 등 대부분이 인프라 개발과 에너지 프로젝트에 연계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기업금융 형태다. 중동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프로젝트 지연이나 자금 회수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은행권을 향한 대출 확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 중동발 경제 충격 대응을 위해 약 20조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금융당국은 또 금융지주들이 2030년까지 생산적·포용 금융에 약 508조원을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핵심 성과지표(KPI)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건전성 관리와 정책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연체율 상승과 글로벌 금융 불안이 겹친 가운데 기업대출 확대 압박까지 이어지면서 리스크 관리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실물경제 충격이 누적되는 국면에서는 금융권 부실이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환율과 유가, 기업부채 문제가 동시에 작용할 경우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 부담이 예상보다 빠르게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