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 때보다 기초체력 '튼튼'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 '몰라'美-中 흔들리자 신흥국 불똥… "정부 우수성 알리며 투자유치 노력해야"
  • ▲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외부에서 몰아치는 풍랑이다. ⓒ 연합뉴스
    ▲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외부에서 몰아치는 풍랑이다. ⓒ 연합뉴스

    이제 갓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 파도타기 입문자. 그런 그를 덮치려고 하는 거대한 파도. 대한민국 안팎의 경제상황을 짧게 나타낸다면, 이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행진이 이어지고, 외환보유고도 안정을 찾아가는 등, 대한민국 경제는 어느 정도 기초 체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세계 경제의 풍랑이 너무나도 높고 가파르다는 것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만으로도 벅찬데, 이젠 중국 경제 둔화까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을 잡아 흔들고 있다.

    세계경제의 외풍(外風)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한국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을 <뉴데일리>가 짚어봤다.

  • ▲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해, 현재 경제상황은 IMF 위기 당시보단 양호한 상태로 평가받는다. ⓒ 연합뉴스
    ▲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해, 현재 경제상황은 IMF 위기 당시보단 양호한 상태로 평가받는다. ⓒ 연합뉴스


    ◇ IMF 때보단 낫다. 하지만…

  • 최근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쇼크의 시작은 신흥국 위기였다. 이는 1997년 태국 밧(THB)화 가치 폭락으로 아시아 전역에 퍼진 외환위기를 연상케 한다. 이는 한국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기업 줄도산과 실업사태, 초고금리 등 혹독한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이 17년 전과 같은 외환위기에 직면할 개연성은 크지 않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1997년과 2014년 한국의 경제지표는 상반된 모습이다. 

    1997년 당시는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면서 외채가 불어나고 외환보유액이 고갈됐었다. 경상수지 적자는 1996년 237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듬해에는 더 늘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면 적자 규모에 맞게 원화 가치가 평가 절하돼야 하는데도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를 높게 유지했다. 외환보유액도 200억 달러를 갓 넘은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외환보유액은 1997년보다 16배 이상으로 많은 3400억 달러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경상수지는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음에도 사상 최대치인 707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1997년 초 50%를 넘었던 단기 외채 비중은 27% 수준으로 낮아졌다. 환율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원화가 신흥국 통화 가운데 가장 유력한 생존 후보"라고 평가했다.

    ◇ 美·中 흔들리니, 신흥국 '휘청'

    문제는 일부 국가들의 일인 줄 알았던 경제 불안이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세계 금융시장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새해가 밝을 때만 해도 미국 경제는 온통 낙관론이 지배하는 분위기였다. 작년 미국 증시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고 기업실적에 대해서도 장밋빛 전망이 많았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양적완화 축소를 단행했고 투자자들은 “드디어 5년 만에 미국발 금융위기의 끝이 보인다”며 환호했다.

    이런 믿음은 순식간에 혼란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발표된 2013년 12월 고용지표는 시장의 기대치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3일 발표한 올 1월 제조업지수가 51.3으로 지난해 5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내며 예상치(56.0)를 크게 밑돌자 “미국 경제의 회복이 생각보다 더딘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졌다. 최호상 국제금융센터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의 재고 증가, 재정지출 감소, 주택경기 둔화로 미국의 1분기(1∼3월) 성장률이 지난해 말보다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둔화 양상이 미국보다 더 뚜렷하다. 최근 중국 당국이 발표한 제조업 및 비제조업 지수가 동반 하락한 데다, 민간 기관들의 성장률 전망치도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중국경기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원자재 값이 급락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대 수입국인 중국 경제가 식으면서 2011년 t당 1만 달러를 넘었던 구리가격은 현재 7000달러 선까지 밀린 상황이다.

    이처럼 경제 위기에 대한 체감이 선진국까지 확산된 것은 양적완화 축소로 인한 신흥국 자금이탈과 주요국의 경기둔화가 겹쳤기 때문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불안감이 계속 퍼지면서 희생양이 될 만한 ‘취약국’이 어딘지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신흥국들이 차례로 무너지면 미국이나 중국 경제에도 악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 있다”라고 진단했다.

    인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취약국으로 지목되는 나라들도 금리인상 등으로 방화벽을 치고 있지만 환율 방어엔 큰 효과 없이 자국의 경기만 죽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과 일본은 반대로 디플레이션 위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손성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이번 위기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중이 한꺼번에 경기둔화에 빠지면 한국도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의 튼튼한 기초체력 알리기에 정부가 나서야"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매우 튼튼하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에게는 이런 점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뉴스통신사 블룸버그의 톰 올리크 한국·중국·일본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발생하고 있는 신흥국 쇼크에서 한국도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리크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중국 경제 전문 통신원, 영국 재무부 한중일 경제 정책 분석가 등을 지낸 동북아시아 경제 전문가다. 

    그는 “한국은 충분한 외환보유액, 수출 호조와 꾸준한 경제 성장, 부정부패가 적고 정부 정책이 잘 시행되는 점 등 매우 좋은 상황”이라면서도 “하지만 이 같은 훌륭한 장점들이 해외 투자 자금을 끌어 모을 만큼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미국이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기로 결정한 이후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 근거다. 

    지난해 12월 18일(현지 시간) 미 연준이 양적완화 규모를 100억 달러 줄이기로 결정한 직후 달러 당 1050원대 초반에서 맴돌던 원-달러 환율은 한 달 만에 1080원대까지 올랐다. 원화 가치가 하락한 셈이다.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양적완화 축소 발표 이후 이달 21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총 2조8663억 원의 돈을 회수했다.

    올리크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수출 규모 상위 20개국 중 신흥국 비중이 57% 정도”라며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이 길어지면 한국 경제도 ‘간접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임금 노동력을 무기로 추격하는 중국과 낮은 엔화 가치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은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현상’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한국 경제의 우수성을 알리고 투자를 유치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 ▲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해, 현재 경제상황은 IMF 위기 당시보단 양호한 상태로 평가받는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