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샤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과 세계적 무대 지휘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협연
  • ▲ 마르코 발데리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뉴데일리경제
    ▲ 마르코 발데리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뉴데일리경제

    “어떤 공연에서든지 내가 주목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투명한 지휘자가 되어 관객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느낀 감동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평생 그 음악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훨씬 기쁜 일이다”


    최근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세계적인 지휘자 마르코 발데리(Marco Balderi)를 지난 30일 직접 만났다. ‘세계 오페라계의 거장’이라는 무거운 타이틀과 달리 직접 만난 그는 겸손함과 순수함을 간직한 소탈한 성격의 음악가였다.


    마르코 발데리는 1984년부터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지휘 거장들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샤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등과 함께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또한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수 차례 공연을 함께 하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도 했다.


    그가 기억하는 3대 테너의 장점은 명확했다.


    그는 “도밍고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완벽한 성악가”라고 평하며 “가진 소리가 특별히 매력적인 것은 아니지만 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을 완벽하고 조화롭게 이끄는 힘을 가졌다. 외모 또한 잘생겨서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할 수 있는 하모니를 가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호세 카레라스에 대해서는 “로맨틱 레퍼토리에 있어서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테너”라며 “특히 피아니시모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성악가”라고 기억했다.


    마지막으로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우리 세기에, 어쩌면 다음 세기를 통틀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테너”라고 극찬하며 “덩치가 크고 뚱뚱해서 사람들이 그를 무식하게 봤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는 굉장히 영리하고 섬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바로티는 정말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가끔 내게 직접 전화를 해 공연 잘 하라며 안부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며 “큰 덩치에 걸맞게 대식가이기도 했다. 함께 식사를 하는데 피자 5판을 먹더라”는 재밌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 ▲ 마르코 발데리 ⓒ뉴데일리경제
    ▲ 마르코 발데리 ⓒ뉴데일리경제


    발데리는 지난 1988년 올림픽 기념 한국 창작 오페라 ‘시집가는 날(The Wedding Day)’의 지휘를 시작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고 매년 한국 관객들과 그의 음악 세계를 나누고 있다.


    그는 “이태리는 물론 멕시코, 타지키스탄,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스 등 다양한 국가에서 매년 협연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 오페라의 수준은 그 중에서도 손꼽힐만하다”면서도 “아쉬운 점은 한국 오케스트라들이 하나의 공연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오페라의 본고장이자 마르코 발데리의 고향인 이태리에서는 연주가들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단에 소속 돼 있으면 생계가 보장되지만 한국은 그런 환경이 아니다 보니 생계를 위해 여러 공연을 동시에 준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짧은 시간을 투자해 큰 효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섬세하고 미묘한 표현보다는 모든 음악이 일괄적으로 ‘괜찮은 수준’으로 끝나버린다. 음악의 세기도 ‘크게’와 ‘작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또 “오페라는 완벽한 소리만을 보여주는 극이 아닌 종합예술이다. 한 장면 한 장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극의 흐름을 고려해 조화롭게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색다른 연출이나 창조보다는 오페라 작곡가의 의도를 먼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국 오페라 연출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그는 “한국 오페라계의 이런 문제점을 고친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공연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애정 어린 조언을 남겼다.


  • ▲ 마르코 발데리 ⓒ뉴데일리경제

    마르코 발데리는 지난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의 오페라과 초빙 교수로 1년간 재직하며 한국 제자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학생들은 굉장히 재능이 뛰어나다. 그러나 입시 교육을 주로 받았기 때문인지 모두가 함께 모여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경쟁적, 개별적 환경에서 따로따로 연습하는 것이 몸에 배 있었다”며 “학생들과 되도록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토론하는 것에 집중했다. 1년간의 수업이 끝난 뒤 한 제자가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클래스’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또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 때 인연을 맺은 학생들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마르코 발데리가 한국에서 공연을 할 때면 매번 잊지 않고 학생들이 찾아와줘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마르코 발데리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작곡에 4년이 걸렸다. 푸치니뿐만 아니라 모든 오페라 작곡가들은 하나의 작품을 내 놓을때 마치 자식을 맡기는 심정으로 내 놓는다"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고 판단하기에 앞서서 작곡가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 모든 음악가들이 정성과 최선을 다해 이들의 음악을 표현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마르코 발데리는 오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랜드오페라단이 푸치니(G. Puccini) 서거 90주기를 기념해 올리는 갈라 콘서트 ‘올댓 푸치니, 올댓 오페라’ 공연에서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을 지휘한다.


    7월과 8월에는 국제음악아카데미 음악캠프에 참가하며 올 여름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투란도트’ 지휘를 맡았다. 9월에는 한·이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베세토오페라단과 함께 한국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11월에는 쓰리테너 김기선, 김동원, 이동명이 출연하는 ‘트레아미치(Tre Amici)’ 공연을 지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