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조사 넘어 제3의 감정…마땅한 비교사례 없어세입자·시행사 평가액 중간치 제시…논란 지속될 듯
  • ▲ 한남더힐 아파트 단지 내부 모습. ⓒ국토교통부
    ▲ 한남더힐 아파트 단지 내부 모습. ⓒ국토교통부


    고가 민간 임대아파트인 '한남더힐'의 감정평가액 논란과 관련해 한국감정원이 사실상 제3의 감정을 통해 적정가격선을 제시했지만, 세입자·시행사 양측 평가액의 단순 절충액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원은 새 비교물건을 선정해 평가액을 산출했다지만, 주택 규모별 적정가격 수준도 양측 평가액의 중간값을 중심으로 가격이 제시돼 절충액을 찾기 위해 비교사례를 짜깁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양측 평가액 중간값이 모두 제시된 적정가격의 근삿값 범위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2일 감정원에 의뢰해 한남더힐 세입자·시행사 측 감정평가액의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양측 모두 부적정 판정을 받았다며 감정평가사와 해당 법인을 징계처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감정원은 양측 평가법인 모두 비교대상 사례 선정과 시점 수정(비교대상의 거래 시점 가격을 평가 시점으로 고쳐 환산하는 것), 품등 비교(조망·위치 등 아파트 품질 결정 조건을 비교하는 것) 등이 미흡해 평가액이 적정가격 범위보다 현저하게 과소 또는 과다 평가됐다고 판명했다.


    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공동주택 감정평가는 △인근 유사 공동주택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한 비교방식을 기본으로 하되 △회계감사보고자료 등을 참고해 대상물건의 건설비용 추정액을 기초로 한 원가방식과 △임대료 등을 분석한 수익방식 등을 추가로 적용해 합리성을 검토해야 하지만, 비교방식만을 작용했다는 것이다.


    감정원 관계자는 "임대료와 원가 관련 자료도 있어 원가·수익방식을 추가 적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감정원은 이례적으로 적정가격 수준을 제시했다.


    한남더힐 600세대에 대한 평가총액은 세입자 측은 1조1699억원, 시행사 측은 2조5512억원이다.

    감정원은 1조6800억~1조9800억원을 제시했다.


    이는 비교방식으로 1조8300억원의 시산가액을 산출한 뒤 원가·수익방식은 물론 전세가와 공시가격 대비 매매가를 추가로 조사해 평가액을 산출한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감정원이 양측 법인들처럼 비교방식을 기본 적용해 뽑은 평가액이다. 감정원은 1조8300억원을 가액으로 산출했다.

    이는 양측 평가액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세입자 측 평가액보다는 6600여억원이 많고 시행사 측보다는 7200여억이 적은 금액이다.


    주택 규모별 평가액도 마찬가지다. 한남더힐은 87~332㎡ 7가지 유형이 있는 가운데 감정원이 제시한 금액은 양측 평가액의 중간 절충액을 기준으로 규모에 따라 500만~1400만원 범위에서 적정가격이 매겨졌다.


    87㎡의 경우 세입자 측은 3.3㎡당 2449만원, 시행사 측은 3743만원을 제시해 1294만원의 차이를 보였다. 감정원이 제시한 금액은 3000만~3500만원이다.

    이는 세입자·시행사 측 금액 차의 절반인 647만원을 각각 세입자·시행사 측 금액에 더하고 뺀 3096만원의 근삿값 범위다.


    246㎡는 3.3㎡당 감정액이 세입자 측 2889만원, 시행사 측 5760만원이다. 감정원은 양측의 금액 차 2871만원의 절반인 1435만원을 각각 양측 평가액에 가감한 4324만원의 근사치 범위에서 4000만~4600만원을 적정가격으로 봤다.


    합산 감정액이 50억원까지 차이 났던 332㎡도 세입자 측은 3.3㎡당 2904만원, 시행사 측은 7944만원을 평가액으로 내놨고 감정원은 4600만~6000만원을 제시했다.

    감정원 제시금액의 중간값은 5300만원으로 이는 세입자·시행사 측 감정액 차이 5040만원의 절반인 2520만원을 각각 양측 금액에 더하고 뺀 5424만원과 124만원 밖에 차이가 안 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올 1월부터 5개월에 걸쳐 타당성 조사를 벌인 감정원이 양측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려고 절충점을 찾는 선에서 적정가격을 짜깁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비교물건 선정 주택 규모별로 제각각…선정기준 애매 논란


    감정원은 국토부 의뢰에 따라 양측 감정평가업체의 평가액이 관련 법령 등에 견주어 타당하게 이뤄졌는지를 조사했다.


    감정원은 이 과정에서 양측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적정 여부 판단의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 새로운 비교물건을 선정하고 자체적인 감정을 벌였다. 타당성 조사를 넘어 사실상 제3의 감정을 한 셈이다.


    문제는 감정원이 비교사례를 선정한 방법이 세입자·시행사 측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원은 세입자·시행사 양측이 거래사례비교법을 적용하면서 사례 선정이 미흡했다고 판명했다.

    주변에 조건이 비슷한 아파트가 있는 데도 이를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고 엉뚱한 물건과 비교해 의뢰인 입맛에 맞는 감정평가 결과를 내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남더힐의 감정평가를 진행한 해당 평가사들은 지난달 이의신청에서 감정원의 감정방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감정원의 평가방법이 인근 지역 거래사례가 아닌 서울 시내 거래 평균가격을 잣대로 삼았다는 것이다.


    감정원 관계자는 "여러 거래사례 중 △인근 지역 △유사한 규모 △최근 거래 등을 기준으로 비교물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즉 주택 규모에 따라 87㎡는 용산 구내 A지역, 246㎡는 B지역, 303㎡는 C지역 등으로 비교사례가 뿔뿔이 나뉘어 평가돼 지역별 편차가 무시됐을 가능성이 있다.


    감정원은 용산지역에서 비교사례를 선정했다는 태도지만, 최근에 유사한 규모의 거래가 없었다면 대상 물색범위가 용산구를 벗어났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남더힐은 비교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경우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한남더힐은 주변에 비슷한 입지, 비슷한 마감수준의 비교할 만한 단지가 없어 가격 평가가 쉽지 않다"며 "감정원 평가 금액 자체도 적정성 여부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감정원 관계자도 "임대주택이라 실거래 사례가 없는 데다 거래 규모가 방대하고 분양전환을 목적으로 아파트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라 세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한남더힐처럼 분양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사례는 없었지만, 대상과 유사한 최근 사례를 선정해 비교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비교사례 공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 ▲ 한남더힐 아파트 단지 모습. ⓒ국토교통부
    ▲ 한남더힐 아파트 단지 모습. ⓒ국토교통부


    ◇세입자들 거센 반발…논란 지속될 듯


    세입자들은 감정원 조사결과에 반발하고 나섰다.


    세입자로 구성된 분양대책위원회(대책위)는 2일 "국토부가 시행사와 결탁해 시행사가 폭리를 취할 수 있게 승인해줬다"며 비난했다.


    87㎡형의 경우 시행사 측이 제시한 대로 분양전환이 이뤄지는 가격이 3.3㎡당 2800만∼2900만원인데 감정원이 제시한 금액은 3000만∼3500만원으로 훨씬 높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4월 발표한 한남더힐의 공시가격은 3.3㎡당 평균 2700만원인데 감정원 타당성 조사 금액은 4300만원으로 공시가격보다 60%나 높은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대책위는 시행사 측이 밝힌 3.3㎡당 1000만원의 건축비도 뻥튀기됐다며 감정원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윤인섭 대책위원장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감정원이 제시한 가격이 결국 분양전환가격의 기준선이 되지 않겠느냐"며 "감정평가를 다시 하더라도 분양가를 낮추지 않으면 분양전환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토부가 징계를 예고한 감정평가사·법인도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감정평가협회는 2일 국토부 발표에 대해 "절차·내용상 여러 문제가 있다"고 날을 세웠다.


    ◇한남더힐 감정평가 논란은


    한남더힐은 2009년 분양 당시 재벌 자녀와 유명 연예인이 대거 청약해 화제를 모았다.


    서울의 전통 부촌인 한남동 옛 단국대 부지에 지어진 데다 임대주택임에도 보증금이 최대 25억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비싸다.


    논란은 의무 임대기간 5년의 절반이 지나 분양전환이 가능해진 지난해 7월부터 불거졌다.


    시행사가 감정평가한 분양전환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세입자들이 다른 법인에 평가를 의뢰했는데 평가액이 너무 크게 차이 났기 때문이다. 가장 면적이 넓은 332㎡형은 금액 차가 50억원을 넘었다.


    양측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지난해 세입자 측이 국토부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감정원이 타당성 조사를 벌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