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 6조 넘겼는데 금리는 상승 … 시장 신뢰 흔드는 중앙은행 시그널유동성 풀어도 환율 1480원 돌파, '안정' 대신 커지는 불안대출채권까지 담보로 … 한은 비상카드가 던진 경고음돈 풀고도 통제 안 되는 시장, 통화정책 리더십 시험대 오른 이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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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이 은행권 뱅크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긴급 여신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장의 시선이 곱지 않다. 중앙은행이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한 안전판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제도 보완을 넘어 통화정책 신뢰에 대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짙다.

    19일 한은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은행 보유 대출채권을 담보로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는 제도를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기존 국공채·통안증권 중심의 담보 체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사시 은행의 가장 큰 자산인 대출채권까지 동원하겠다는 뜻이다. 디지털 금융 확산으로 예금 인출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응 수단을 넓히겠다는 설명이지만, 시장은 이를 '선제적 대비'라기보다 '불안의 자백'으로 읽고 있다.

    실제 한은의 최근 유동성 행보는 심상치 않다. 월말 기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잔액은 올해 1분기 5000억원에서 2분기 2조원, 3분기 4조 5000억원을 거쳐 4분기 들어 6조~6조 5000억원 수준까지 불어났다. 8개월 만에 10배 이상 확대된 셈이다. 여기에 한은은 12월 초 국채 단순매입 1조 5000억원까지 발표하며 사실상 비회수성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문제는 돈을 이렇게 풀어도 시장 반응이 기대와 다르다는 점이다. 통상 유동성이 늘면 금리는 내려가야 하지만,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3.4% 안팎에서 좀처럼 하락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발행 물량 부담과 재정 확대 우려가 겹치며 상방 압력이 유지되는 모습이다. 원·달러 환율도 1470원대를 넘나들며 1480원을 돌파했다. 유동성 공급이 금융시장 안정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외국인 자금 흐름도 미묘하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은 국내 채권을 약 20조원 순매수했다. 표면적으로는 신뢰 회복처럼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베팅'으로 해석한다. 한국 경제와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수익 거래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점도 불안 요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 PF 익스포저는 186조 6000억원으로, 은행권 PF 익스포저는 약 68조원으로 추정된다. 금리 인하 지연 속에 이자만 연명하는 '좀비 사업장'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뱅크런 대비 긴급 여신까지 꺼내든 것은 시장에 "더 큰 리스크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 됐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정책 기조가 일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긴축을 말하면서 유동성을 풀고 안정화를 강조하면서 비상대책을 꺼내드는 모습이 반복되면서다. RP 확대와 국채 매입으로 시간을 벌고 있지만, 구조조정과 리스크 정리를 미루는 한 통화정책의 신뢰 회복은 쉽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한은이 유동성 공급과 구조조정,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균형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RP 운용 정상화 로드맵과 PF 부실 규모에 대한 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병행되지 않으면 정책 신뢰는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위기를 대비하겠다는 한은의 신호를 시장이 그대로 믿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는 것.

    한 금융시장 전문가는 "중앙은행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준비가 시장에 어떻게 읽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뱅크런 대비책이) 안도보다 불안을 먼저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