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제조 넘어 장비까지 자립 범위 확대5나노 이하 첨단칩 개발 재개 속도낼 듯AI용 메모리·범용 반도체 수급 영향 불가피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면서, 반도체 자립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설계·제조뿐 아니라 장비 영역까지 국산화 범위를 넓히는 흐름이 가시화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초 선전의 보안 연구시설에서 EUV 노광 장비 시제품을 완성해 시험 가동을 진행 중이다. 해당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해 온 EUV 장비와 동일한 13.5나노미터(㎚·1㎚=10억분의 1m) 파장의 극자외선을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제 양산 공정에 투입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는 이 프로젝트를 ‘중국판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비유하며, 중국이 국가 차원의 반도체 자립 전략 아래 EUV 개발을 비공개로 추진해 왔다고 전했다. 중국은 해당 장비를 고도화해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현실적인 시점을 2030년 전후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서방 전문가들이 예상해 온 ‘10년 이상 기술 격차’보다 빠른 진전이라는 평가다.

    EUV 노광 장비는 5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핵심 장비다. 이에 활용되는 기술은 머리카락 굵기보다 수천 배 얇은 회로를 실리콘 웨이퍼에 새길 수 있게 해 반도체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 해당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첨단 공정으로의 진입 자체가 어렵다. 실제로 엔비디아와 AMD가 설계하고 TSMC·삼성전자·인텔이 생산하는 최첨단 AI·로직 칩은 모두 ASML의 EUV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EUV 장비는 그동안 중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해 왔다.

    미국과 네덜란드 정부의 수출 규제로 중국의 EUV 장비 접근이 차단되면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심자외선(DUV) 장비를 활용해 7나노 공정까지는 구현했지만, 3나노 이하 공정에서는 한국과 대만 업체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2023년 이후에는 DUV 장비마저 중국 수출이 제한되면서 공정 고도화는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

    중국이 EUV 노광 장비를 자체 개발할 경우, 그동안 5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으로의 진입을 가로막아 왔던 기술적 제약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기간 내 양산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기는 어렵더라도  공정 개발 단계에 다시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점에서다. 

    중국의 공정 진입 장벽 완화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중장기적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한국 메모리 업체들은 EUV 기반 양산 경험과 미세 공정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술 우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장비 자립을 통해 공정 고도화를 추진할 경우,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전반에서 경쟁 구도가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AI용 메모리와 범용 반도체 분야에서는 중국의 자급률 상승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주요 수요처를 잠식하며 수급 환경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 내 AI 데이터센터와 전자기기용 반도체 수요가 자국 생산으로 대체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입 수요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범용 반도체 영역에서는 중국산 물량이 해외 시장으로 유입되며 가격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기술적 한계도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EUV 장비의 핵심인 광학계와 진공 시스템, 정밀 제어 기술은 장기간 축적이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ASML의 장비에 적용되는 독일 자이스(Zeiss)의 초정밀 광학계는 원자 단위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데, 중국 시제품은 아직 정밀도와 내구성에서 상용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시제품 역시 일부 부품은 ASML 중고 장비나 일본 니콘·캐논 계열 부품을 활용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단기간에 EUV 장비를 안정적으로 상용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설계와 제조를 넘어 장비까지 자립 범위를 넓히려는 흐름 자체가 한국과 대만에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반도체 산업 역시 미세 공정 경쟁력뿐 아니라 장비·소재·공정 전반에서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해지는 국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