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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자유로운 새, 아무리 애써도 길들여지지 않아.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어 한 번 싫다면 그만이야...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사랑해주지. 하지만 내가 사랑하게 되면 조심해야 돼"
뜨거운 집시 여인 카르멘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조차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새와 같았다.
수지오페라단 창단 5주년 기념으로 공연된 오페라 '카르멘'은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며 한국 오페라단의 저력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스페인 세비야 광장의 매혹적인 열기가 그대로 재현됐다.
세계 최정상급 성악가들과 '카르멘 전문지휘자'로 유럽에서 명성이 높은 까를로 골드스타인, 웅장한 무대 세트와 화려한 무대 의상, 귀에 익은 음악과 극적인 스토리까지. 오페라 '카르멘'은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지난 1875년 3월 초연된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약 140년 전에 공연됐다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파격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절묘한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매력을 여성을 일컫는 '팜므파탈'의 전형으로 불리는 '카르멘'.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지만 결국 그녀로부터 버림 받고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게되는 돈 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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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공연에 '카르멘'으로 선 메조 소프라노 나탈리아 에브스타페바와 '돈 호세' 역의 마리오 말라니니는 세계적 명성에 걸맞는 걸출한 음악과 연기 실력을 뽐냈다.
'카르멘' 역은 노래와 연기뿐만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춤과 연극적인 대사까지 소화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나탈리아는 이를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남자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카르멘'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날카롭게 표현했다.
마리오 말라니니는 호소력 짙은 하이톤으로 듣는 이의 귀를 시원하게 만들었으며 사랑과 집착 사이를 오가는 '돈 호세'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후반부까지 매끄럽게 이어가 큰 박수를 받았다.
돈 호세의 약혼녀인 '미카엘라'와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국내 최정상급 성악가들이 기량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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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호세'의 약혼녀인 순박한 시골 처녀 '미카엘라' 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지현은 '카르멘'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3막의 대표 아리아인 '이젠 두렵지 않아'를 부를 때는 김지현 특유의 맑고 청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가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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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카미요' 역의 바리톤 이동환은 투우사 특유의 힘 있고 극적인 표현을 안정적으로 소화해 냈다. 메르세데스 역의 이레네 몰리나리와 프라스키타 역의 파올라 산투치 또한 조연의 역할을 넘어 힘 있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오페라 '카르멘'의 유명한 넘버들을 프라임 필 오케스트라의 풀사운드로 감상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강렬한 '카르멘 서곡', 카르멘의 교태와 관능을 함축시킨 듯 한 아리아 '하바네라(사랑은 자유로운 새)'와 '집시의 노래', 카르멘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돈 호세의 '꽃노래', 광고 음악으로도 유명한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 '카르멘과 호세의 2중창', 미카엘라의 '이젠 두렵지 않아' 등 대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곡들이 까를로 골드스타인의 깔끔한 지휘로 연주됐다.
이 밖에도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무대 의상과 무용단의 군무, 극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더한 무대 세트와 조명 등도 오페라 '카르멘'의 완성도를 높였다.
돈 호세의 칼에 맞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카르멘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입고 있던 화려한 드레스와 붉은 꽃가루로 대변되면서 죽음앞에서조차 자유로운 한 마리의 붉은새를 연상케 했다.
이번 오페라 '카르멘'은 정통 오페라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예술성과 오페라에 익숙치 않은 관객들도 쉽고 재밌게 느낄 수 있는 대중성까지 겸비해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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